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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석 Oct 20. 2021

운명(運命, destiny)

          운명(運命)이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목숨이나 미래의 행복, 불행한 일이 미리 결정된 처지를 말한다. 사람이 통제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삶과 죽음, 특별한 사건을 초자연적인 힘과 연관 지어서 표현한 단어이다. 이와 함께, 숙명(宿命), 천명(天命), 팔자, 운수(運數) 등도 운명에 속하는 또는 이와 관련된 비슷한 용어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운명에 관한 여러 용어들이 있다. 특히 운명으로 알려진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은 가까이 다가오는 알 수 없는 운명(fate)을 실감 나게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다. 

From Wikipedia, Symphony No. 5 (Beethoven)


          과연, 행복, 불행은 미리 결정되어 다가오는 것으로, 나의 힘이나 노력과는 상관이 없이 일어나는 것 일가?  ‘운명에 맡기다’, ‘내 팔자야!’, ‘운수가 나빠서’와 같은 표현은 운명이란 사람이 바꿀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을 드러낸다. 그런데, “조선의 운명은 이순신과 그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라는 표현에서는 운명이란 사람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있다. 운명이란 바꿀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은, 주어진 여건에 따라 자신을 바꾸고 순응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갖게 한다. ‘팔자려니’ 하며 살면 마음은 편하지만, 주어진 여건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와 다르게, 운명은 사람이 바꿀 수 있는 무엇이란 생각은 도전하고 개척하며 주어진 여건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한다.  

          운명을 뜻하는 가장 일반적인 영어 단어는 ‘fate’이다. 우리말, 운명처럼 어떤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힘으로 발전되는 사태, 그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이 말이 꼭 불운한 일들과 관련될 필요는 없지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gloom and doom’이란 단어는 파멸이나 불행한 쪽으로 사태가 진전된다는 뜻의 운명이다. 주로, 경제나 사업에 관해서, 어두운 전망을 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운명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 ‘destin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Destiny’는 라틴어 ‘destinare’에서 나왔다. 사람이나 물체가 ‘앞으로 서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으로 아이들 이름으로도 잘 사용한다. ‘Destination (목적지)’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Destiny는 신의 뜻이나 고상한 뜻에 따라 예정되어 있는 목적이나 미래의 설 곳이란 의미에서의 운명이다. 특히, 소명(召命)이 분명하고 사명감(使命感)이 확실할 때, 이 용어를 쓴다.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은 “우리의 운명(destiny)은 절망이라는 잔보다, 기회라는 거룩한 잔(聖杯)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그것을 잡자”라고 잘 표현하였다. 운명은 우리가 피해야 할 절망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아야 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간 말이다.

          물론,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이 있다. 특히,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한계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잘 숙(宿)’이 들어간 ‘숙명(宿命)’이란 말이 생긴 것 같다. 그렇다고,  가난이나 장애와 같은 여건을 운명이나 숙명(宿命)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자세이다. 행복과 불행의 요소들을 운명이나 팔자로 돌리게 되면, 자신감 혹은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떨어지게 된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란 특정한 목적들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자신의 능력을 믿는 자신감을 말한다. 자기 효능감은 미래에 대한 전망과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건강, 교육, 직업, 결혼에 관련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자기 효능감이 낮아지면,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만남과 이별, 건강과 질병, 부(富)와 가난을 운명(運命), 운수(運數), 인연(因緣), 팔자소관 등으로 돌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바꾸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의 뜻 아래,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그 뜻한 곳에 서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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