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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부터 곱창을 좋아했다. 간혹 곱창이라는 부위가 동물의 장기라서 못 먹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런 생각 따위는 나지 않을 만큼 나는 처음부터 곱창을 너무 좋아했다. 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첫 번째 주제는 단연코 곱창이라고 생각했다. 곱창을 구울 때 나오는 기름으로 묵은지, 부추무침, 콩나물무침을 같이 굽고 버섯이나 감자, 떡, 양파를 함께 구워도 참 맛있다.
그런 나에게도 곱창이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다. 곱창을 한번 사 먹으려면 오만 원이 쉽게 나갔기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이십 대 초반에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곱창을 쉽게 사 먹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곱창을 조금 거리낌 없이 사 먹게 된 것은 7년 전 즈음이었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어갈 무렵 내 자취방 옆 건물에 곱창집이 하나 있었다. 고단한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 뒹굴거리며 집에 누워 있으면 오전부터 곱창 초벌구이 냄새가 내방까지 흘러들어왔다. 때문에 나는 곱창이 먹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 했고 구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다정하게도 나에게 곱창을 자주 사주었다. 단연코 그 냄새 때문에 도저히 곱창을 안 먹고 넘어갈래야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곱창집의 단골이 되었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특별한 날에는 그 동네까지 찾아가서 그 곱창을 사 먹는다. 그 집 곱창은 거하게 먹은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곱창생각이 나게 만들었다. 남편과 나는 우스개 소리로 혹 사장님이 곱창에 마약을 넣은 게 아니냐는 소리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곱창맛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그 곱창을 먹으면서 연애를 했고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쌓은 게 아닐까. 지글지글 익어가는 곱창을 먹으며 부딪쳤던 술잔만큼 우리의 연애는 더 깊어질 수 있었다.
곱창은 기름기가 많아서 느끼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곱창을 먹을 때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참 다양하다. 콩나물무침이나 부추무침, 묵은지나 대파김치, 고구마나 감자, 떡이나 양파, 생마늘이나 마늘종을 쌈장에 찍어먹도록 다양하게 나온다. 이렇게 야무지게 다양하게 안주를 집어 먹으면서 곱창을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다. 곱창을 먹는 데 있어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곱창 향수를 뿌린 것처럼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멋쟁이는 아니지만 옷에서 음식냄새가 나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아끼는 옷을 꺼내 멋을 내고 신나게 곱창을 먹으러 갔다. 가장 싫어하는 것을 이겨내게 만드는 것이라면 찐 사랑이 아닐까.
곱창은 손질하는 법이 정말 까다로워서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 음식 중에 하나다. 일단 곱창 껍질과 기름을 찢어지지 않게 잘 분리하고 소주에 담가 박박 씻어서 잡내를 제거해야 한다. 곱창의 잡내를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 곱창맛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곱창은 집에서 구워 먹기보다는 손질 잘하는 식당에 직접 가서 구워 먹어야 한다.
잘하는 곱창집에 직접 가서 곱창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손질의 불편함 뿐만이 아니다. 곱창집에서 조그만 뚝배기에 딸려 나오는 선지해장국이 그리 맛있다. 나는 평소 선지해장국을 좋아하지 않지만 곱창을 먹다가 개운하게 해장국을 한입 떠먹으면 그렇게 궁합이 좋다. 또 곱창집의 특징이 천엽이랑 생간이 작은 그릇에 담겨 나온다. 나는 곱창은 먹지만 천엽이랑 간은 먹지 못한다. 뭔가 생김새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생김새다. 그래서 접시를 받자마자 바로 사장님에게 돌려드린다. 한분이라도 좋아하는 분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곱창구이집에 가면 대창, 막창, 염통 등등 부위도 참 다양하다. 일단 곱창은 소곱창과 돼지곱창으로 나뉘고 소의 곱창은 대부분 구이나 전골로 많이 먹고 돼지곱창은 순대의 겉 부분 혹은 야채볶음으로 많이 먹는다. 소의 대창은 기름이 가장 많은 부위로 소기름집이라고 하며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돼지의 대창은 왕순대나 야채볶음용으로 사용한다. 소막창은 붉은색이며 구이용으로 먹고 돼지막창도 구이용으로 많이 먹는다.
애석하게도 최근에 이사 온 집은 다 좋은데 근처에는 맛있는 곱창집이 하나 없다. 곱창이 먹고 싶으면 버스를 타고 20분은 가야 맛있는 곱창집이 나온다. 그게 얼마나 다행이면서도 불행이다. 근처에 있었다면 술 먹을 핑곗거리가 또 하나 생겨서 주야장천 드나들었을 테니 말이다. 곱창을 먹는 데 있어서 화룡점정은 아무래도 곱창을 다 먹은 후 그 기름에 볶아 먹는 볶음밥이다. 이미 곱창과 술을 거하게 먹어서 위장도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라 내 배가 많이 나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꼭 써야 하는 오늘의 업무일지처럼 곱창을 먹으면 마지막에 볶음밥을 주문한다. 불판 바닥을 살짝 누르고 고소한 곱창냄새가 나는 볶음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어디든 마지막에 밥을 볶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한국인이기에 마지막 볶음밥에 따라 마시는 소주가 또 그렇게 달다.
최근에 언제 곱창을 먹었을까. 3개월 전 육아로 지친 친구와 토요일 낮에 만나서 먹었던 곱창이 마지막이었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사랑하는 곱창을 벌써 3개월이나 못 먹고살았을까. 그 친구에게 요즘은 힘들지 않냐며 격려를 핑계 삼아 한 번 더 곱창을 먹자고 졸라봐야겠다.
온몸에 곱창 향수를 뿌려도 좋으니 곱창은 나에게 있어 영원한 넘버 원 술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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