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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Aug 23. 2023

본다는 믿음에 대한 회의, 괴테와 터너

윌리엄 터너의 <그림자와 어둠>과 <빛과 색채>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그는 1800년 전후로 20년간 색채를 연구했다. 1810년 <색의 이론>을 저술했는데, 광학 이론만으로 접근하면 안 되고 그 색채가 불러일으키는 효과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눈의 차원을 벗어나 뇌에서 어떻게 시각 정보를 인지하여 이미지를 형성하는지를 밝히려는 노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색상은 단순히 빛의 물리적 특성으로부터 유추할 문제가 아니라 감각이며, 이 감각은 보는 주체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괴테의 이론을 수용한 인물이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이다. 인상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는 '노란색에 미친 사람'이라는 악평을 들었다. 노란색은 괴테가 ‘빛의 최초의 색’이라고 설명한 바로 그 색이다. 1843년, 그는 괴테의 색채론을 실험한 정사각형의 두 작품을 그렸다.


터너의 1843년 작품 <그림자와 어둠: 대홍수의 저녁(왼편)>과 <빛과 색채: 대홍수 이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그림자와 어둠: 대홍수의 저녁>은 성서의 대홍수에 나오는 어두운 하늘과 소용돌이치는 물결을 담았다. 검은색과 짙은 청색의 덩어리가 빙빙 도는 가운데 그 속으로 보색 관계에 있는 노란빛이 스며들어 세상을 가득 에워쌌다.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신과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보색 관계가 어려운 말이다. 절대적인 색은 없고, 옆에 놓인 색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이 근저를 이룬다. <빛과 색채: 대홍수 이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는 괴테가 '양성(陽性)의 색'이라 했던 황색, 적황색, 황적색이 지배적이다. 영국의 유명한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이 작품의 의미를 묻자 터너는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되는 대로 나온 대답이 아니다. 기본색을 이름이며, 괴테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색 분석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에서 나왔다.  (제목 그림; 터너의 <비, 증기 그리고 속도감: 위대한 서부행 철도(1844)>)



“인간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철학에서 먼저 제기되었다. 플라톤이 그 장본인이다. 그는 <국가론>에서 사람들이 입구를 등진 채 지하 동굴의 벽에 비춘 그림자를 보며 산다고 비유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사슬에 감긴 채 살아왔기에 몸을 움직일 수 없고,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볼 수도 없다. 그리고 등 뒤쪽에서는 먼 거리를 두고 불이 타오르고 있기에 마치 인형극 무대의 스크린을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생명체에게 눈(眼)이 생긴 지는 얼마 안 되었다. 5억 4,000만 년 전 폭발적 진화가 일어난 캄브리아기에 때였다. 잘 발달한 눈은 400만 년 전에야 나타났는데, 지구 생명체 35억 년의 역사를 고려할 때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는 빛 때문이 아니라, 눈이 없어서 암흑 천지였다. 피부나 냄새로 세상을 인식했다. 지금도 식물과 균류, 조류(藻類)와 세균에는 눈이 없다. 다만 전체 동물 종의 95%가 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생명체 간 인지하는 색의 스펙트럼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동물 중에 곤충과 새는 인간에 비해 더 많은, 포유동물은 상대적으로 더 적은 색을 본다.

전자기 스펙트럼과 가시광선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을 가시광선(可視光線)이라 한다. 약 400~700nm(나노미터) 사이의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가 이에 해당한다. 전자기파는 진동수로 분류한다. 낮은 진동수를 가진 것이 전파다. 라디오파, 텔레비전파, 레이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이용되는 마이크로파 등이다. 진동수가 높은 전자기파로는 X선과 γ선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열복사선이 있다. 보통 빛이라 한다. 적외선, 자외선, 그리고 가시광선이다. 그런데 전체 스펙트럼은 가시광선 스펙트럼보다 무려 약 10조 배 더 넓다.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따라서 인간이 볼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또한 빛이 전하는 사물 전부를 그대로 뇌로 전달하지 않는다. 시신경은 눈에 본 내용을 1/10로 압축하여 선조체로 전달하며, 다시 그 정보의 1/300만 뇌의 다음 정거장 기저핵에 다다른다. (케빈 에슈턴, <창조의 탄생>) 망막에서는 일차적으로 정보를 조합, 분석하여 1/25초마다 한 장씩 스냅숏처럼 두뇌로 전송한다. 그리고 1/25초 사이에 도달하는 빛은 무엇이 먼저 도달했는지 알 수 없다. 태아의 뇌가 생성될 때 그중 일부가 기다란 섬유 형태로 자라 생긴 것이 망막이며, 두뇌와 비슷한 구조를 갖췄기 때문이다. 뇌는 이 스냅숏을 연결하여 매끄럽게 이어지는 동영상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생성된다. (프랭크 윌첵의 <뷰티플 퀘스천>)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면, 단순히 색과 형태의 차원을 넘어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것도 뇌의 작용이다. 따라서 거꾸로 뇌에 손상이 오면 시야가 좁아지거나, 인식에 장애가 생긴다. 망막에 상이 맺히지만, 뇌가 의식하지 못할 경우 안 보인다. 그리고 인간 각자가 파장에 따라 나타나는 색을 구별하는 데 차이를 보인다. 이런 까닭으로 괴테가 색과 관련 광학 이론을 넘어 색채가 불러일으키는 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19세기 말 형태 심리학과 연결된다. 눈의 차원을 벗어나 뇌에서 어떻게 시각 정보를 인지하여 이미지를 형성하는지를 밝히려는 노력이다. 결국, 인간의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러니 눈을 너무 신뢰함으로써 안 보였다고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한편 하얀색이 붉은색이나 초록색, 또는 푸른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종의 심리적인 현상이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현실로 인식하는 동굴 속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본다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물리적이기도 하지만, 철학적 혹은 심리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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