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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Sep 05. 2023

<가죽을 벗긴 소>와 파스퇴르

샤임 수틴의 <가죽을 벗긴 소(1925)>

작품은 리투아니아 출신 표현주의 화가 샤임 수틴(Chaïm Soutine,1893~1943)의 <가죽을 벗긴 소>다. <도살된 소>를 그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에게 헌정하는 그림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정물은 상징을 내포했다. 그중 동물의 사체는 우리 자신의 주검을 연상케 한다. 소의 고깃덩어리가 주는 느낌이 인간의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해체된 소를 통해 ‘메멘토 모리’, 즉 인간의 죽음과 삶의 덧없음을 암시했다. 샤임 수틴은 당시로선 생소했던 작가였다. 그런데 2006년 소더비 경매에서 이 작품이 무려 13,773,240달러(한화 150억 원)로,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우연일까?

말년의 작품 <도살된 소(1655, 제목 그림)>는 렘브란트의 철학적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는 생전에 100여 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그렸다. 잘 나가던 젊은 시절에도 자기 내면을 끝없이 탐구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표현주의자 샤임 수틴에게 강한 영감을 선물한 것은 당연했다. 그는 블라맹크에게 심취하면서 선명하고 강렬한 빨강, 초록, 노랑의 원색을 사용했다. 그리고 형태를 심하게 왜곡해 긴장감을 조성했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뤼슈('벌집'이라는 뜻)의 작업실에서 지낼 때 말 도살꾼과 진한 우정을 나눴던 그였다. 소의 살덩어리가 주는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무려 40여 개의 붓을 사용했다. 가져다 놓은 소 옆구리 살에서 나는 악취로 인해 옆집에서 기겁하여 경찰을 불렀다. 그런데 정작 샤임 수틴은 자신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며 오히려 경찰에게 일장 연설을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반항적이면서 격렬한 성향의 화가였다. 



‘프랑스의 자랑’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현대 위생학, 공중보건, 그리고 의학의 아버지다. 그는 화학자였다. 1856년 릴의 양조업자들이 자기 포도주가 왜 쉽게 시어지는지 알려 달라는 요청을 받고, 주석산 결정체를 연구했다. 10여 년간 몰두했다. 그리고 주석산이 입체적으로 비대칭 구조를 가진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화합물이 아니라 생명체,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고유한 성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발효와 부패는 화학과정이 아니라, 미생물의 성장과 연관된 유기 반응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1857년 <젖산 발효에 관한 보고>라는 논문으로 정리했고, 이 논문은 미생물학을 탄생시킨 계기를 마련했다.

파스퇴르의 <저온 살균 실험> (출처; wikipedia)

제멜바이스가 죽은 해인 1865년에 딸이 장티푸스로 죽고 파스퇴르 자신도 건강이 나빠지자, 감염병을 일으키는 극미 생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돌렸다. 당시 많은 과학자가 미생물은 물질이 부패하면 생긴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자연발생설이다. 하지만 거꾸로다. 파스퇴르은 저온 살균 실험을 하면서 포도주를 50~60도로 가열한 후 발효 과정에서 증식되는 효모 중 신맛을 만드는 세포를 모두 없앴다. 따라서 실험은 외부 입자, 즉 미생물에 의해 부패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즉 생명은 오직 생명에 의해서만 탄생한다는 질병의 세균 이론을 뒷받침한다. 


1878년, 질병의 세균설이라 할 수 있는 <미생물설과 그 의학 및 외과학에서의 응용>을 발표했다. 1880년에는 에밀 루(Pierre Paul Émile Roux, 1853~1933)와 함께 가금류에 질병을 일으키는 콜레라 백신을 실용화했다. 약해진 닭콜레라균을 닭에게 주사했더니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을뿐더러 닭에게 면역이 생겼다. 자신을 얻은 파스퇴르는 가축에게 치명적인 탄저병 백신을 만들었다. 면역요법의 시작이다. 하지만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여긴 수의학자들의 도전을 받았다. 의사 면허증이 없던 그는 결국, 광견병에 걸린 아홉 살 조세프와 양치기 소년 쥬피레를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백신 주사를 놓게 했다. 조세프는 훗날 파스퇴르 연구소의 수위가 되었고, 자랑스럽게 맡은 바 직무에 충실했다고 한다. 

파스퇴르가 죽기 직전, 그의 제자 두 명이 림프샘 흑사병은 벼룩이 죽은 쥐에게 있던 박테리아(세균)를 사람에게 옮겨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발견으로 지구상에서 흑사병을 퇴치할 수 있었다. 흑사병은 1346년부터 1352년간 유럽 인구의 1/3을 사망케 한 질병이다. 이후 과학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세균에 의한 전염병을 차례로 정복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내과학 전문가 배리 마셜(Barry J. Marshall, 1951~)의 헌신이 존경받을 만하다. 1980년대 그는 위궤양과 위염이 박테리아로 인해 발병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위에 강산성을 띠는 위액이 있기에 세균이 살 수 없다고 인식이 팽배했다. 따라서 스트레스와 과도한 음주, 또는 매운 음식이 원인이라고 곡해했다. 자기 이론을 건강한 환자들에게 테스트할 수 없었던 그는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궤양 환자의 위에서 채취, 배양한 후 ‘헬리코박터 피일로리’라고 명명한 세균을 삼켰다. 닷새가 지나자 구토와 탈진, 식욕이 떨어졌다. 그로부터 다시 닷새 뒤 위 생체 검사를 하자 세균으로 보이는 것이 온통 퍼져 있었다. 심각한 염증으로, 세균이 위염과 위암의 근본 원인이었다. 아내는 화를 냈지만, 항생제를 투입하지 않았고 이틀 더 지냈다. 이후 약을 복용하자,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이론을 널리 받아들여졌고, 2005년 J.로빈 워런과 같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세균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만 년 전 인류는 모여 살면서 농경을 시작했고, 가축을 키웠다. 터키 동남쪽에서 길든 소는 지금 지구에 13억 마리가 살고 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단백질 구조와 놀랍게도 유사한 닭은 약 200억 마리나 된다. ‘생존과 번식’ 관점에서 보자면, 가축들은 가장 성공한 종(種)이다. 하지만 자연이 선택하지 않았다. 인위(人爲) 선택이다. 오늘날 병에 걸렸다고 할 때 떠올리는 대부분의 질병은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농경 생활을 하던 어느 순간부터 병원체들이 종간 전파를 시작했다. 

자연은 인간을 달리 대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을 대했던 방식의 결과로써 반응할 뿐이다. 이제 가축 혹은 자연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인류 역사의 동력을 ‘총’과 ‘쇠’와 함께 ‘균’을 그중 하나로 꼽았다. 이런 면에서 제멜바이스와 파스퇴르의 가장 큰 공헌은 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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