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세 가득한 ‘멋진 말’을 좋아한다.
3년 전쯤에 고윤정 배우가 나오는 ‘로스쿨’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형사재판의 격언(?)이 인상적이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법전에 명시되어 있는 법률조항은 아니지만, 형사소송법 제275조의 2 피고인의 무죄추정에 해당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시하는 어구라고 한다.
(다큐멘터리나 법률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특정 증거와 원칙만을 이용해 진실(fact)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멋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격언을 하나 정해보았다.
‘선택이 고민스러울 때는 내 기분의 이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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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다녀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느 동네 분께서 침울하고 우울한, 어딘가 모르게 오랜 시간 동안 침전된 것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작은 강아지를 안고 탔는데, 그 작고 발랄한 외모를 가진 아이가 우울해 보였다. 우울해 보이는 강아지라니...
물론 쟨 우울한 게 아닐 수 있지. 오늘 아침 기력이 좀 없을 수도 있고, 감기에 걸리거나 장염에 걸렸을 수도 있지. 그냥 조용한 아이일 수도 있지.
그런데 내 눈에는 분명 ‘우울한 강아지’로 보였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어찌나 깊고 난해한 감정인지.
개라는 종의 동물의 뇌가 ‘우울’을 느낄 수 있게 설계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은 주인에게서 우울이 전염된 강아지였다.
(이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을 주구장창하는 내가 좀 웃기다.)
그 강아지의 모습을 보니, 언젠가 내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나로 인해 그 아이의 ‘mood' 지속적으로 침착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항상 방방 뜨고 행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아이에게 전부일 ‘나’ = ‘그 아이의 세상’을 밝게 만들어주고 싶다.
우울과 슬픔은 생각보다 쉽게 전염되는 감정이라, 주의하지 않으면 풍토병(endemic)이 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냥, 여전히 내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택이 고민스러울 때는 내 기분의 이익대로’ 선택해 가며 적당히 밝은 인생을 살고자 한다.
체력이 너무 부쳐서 기분까지 상하게 되면 일을 줄이자.
일을 미루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면 차라리 그냥 해버리자.
앞으로의 선택은 이전보다 덜 어렵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