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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불감증

나이가 들면 좋은점 1

by 코코맘

교육열이 그다지 높지 않은 동네에서 줄곧 좋은 성적을 받으며 학교를 다닌 탓인지,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더 잘 해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들었다. 칭찬을 받고 싶었지만 원하는 만큼의 칭찬을 받지 못했다. 그 욕구가 항상 충족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95점을 받으면 100점을 받길 바라는 것 같고, 수학 100점을 받으면 전 과목 100점을 받길 바라는 것 같은. 끝이 없는 수영장 레인에 서 있는 느낌.


다만 모든 기억 형성에는 순간의 감정이 개입될 것이기에, 그래서 어린 때의 기억에는 미성숙한 자아가 묻으므로 그 기억은 객관적인 사실을 잘 담을 수 없다. 또한 비록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때 내 안에 성취에 대한 욕구가 없었나 하면 그건 또 아니어서, 내 마음 작용이 왜곡된 기억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의도를 기민한 감각으로 지레 짐작해서 (그것이 맞든 틀리든) 추정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래서 열심히 살았다. 삶은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과 달려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지칠 때 조금 쉬어가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순수한 재미를 느끼는 활동이나 취미랄 건 없었다. 사실 취미를 묻는 사람들의 의도가 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취미요? “

“남는 시간에 뭐 하세요?”

“자는데요.”


‘아니, 공부하는 것(또는 먹고사는 것)만 해도 바쁘고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피곤해져서 자야 하는데 도대체 취미랄 게 뭐야?’ 정말 의문이었다.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성취의 기준도 점점 올라가게 되었다. 정말 웬만해서는 ‘성취’라고 인정해 주기가 어려웠다. 어릴 때 남에게 받고 싶었던 칭찬을, 성인이 된 후 스스로에게도 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전 세계관을 유지해 온 셈이다. 취미 생활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등산을 해도 정상을 찍는 걸로는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제일 짧은 시간 안에 산을 오른 것도 아니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찍은 것도 아닌데, 성취감을 느낄 게 뭐람.’ 헬스장에 가서 주 5회 근력운동을 해도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3대 200도 못 찍고, 근육량도 턱 없이 모자란 걸 보니 역시 난 그저 그런 사람이군. 타고난 근수저가 부럽다!’


놀랍게도 내가 ‘성취불감증’ 상태라는 걸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다들 나처럼 높은 기준을 갖고 사는 건 아니구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건강한 삶을 가족과 함께 영위할 수 있다면 목표랄 건 천천히 이루어도 되나 보다. 내가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내가 그러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이구나. 어쩌면 원래 지내던 방식대로 사는 게 편함을 무의식적으로 알기에, 예전 방식 그대로 나를 대하고 있었나 보다.


기준을 내려놓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리고 기준을 완전히 내려놓기에는 내가 ‘숫자’를 너무 좋아한다. 무엇이든 목표치에 가까워져야 기분이 좋다.

그런데 세상살이 어려운 게 한 두 개 일쏘냐. 이것도 내가 좀 더 편해지는 방식으로 노력해 봐야지.

새삼 나이 드는 게 참 좋다.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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