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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의 그림자

by seungbum lee

물가의 그림자
​저녁놀이 물들인 하늘 아래,
붉은 태양이 수평선에 걸린다.
금빛 물결이 잔잔한 호수에 부서지고,
그 빛줄기는 길게, 길게 이어져
세상과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운다.
​물속에 잠긴 앙상한 가지 끝,
작은 새 한 마리가 홀로 앉아 있다.
검은 실루엣, 고요한 침묵 속에서
새는 혹시, 멀리 떠나온 그리움을 되새길까.
아니면, 다가올 밤의 깊이를 가늠할까.
​주변은 온통 황금빛으로 타오르는데,
새의 모습만은 짙은 고독을 머금는다.
찬란한 아름다움 속에 깃든
이 외로운 풍경은,
마치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비추는 듯하다.
​황홀한 노을빛은 잠시 머물다 사라질 것을 알고,
새는 그 찰나의 고요한 축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어둠이 내리기 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새겨진
작은, 그러나 숭고한 존재의 노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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