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균열
“소연 님, 이 글… 예전 시절 이야기죠?”
그 남성이 책방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연은 잠시 멈칫했다.
그가 펼친 페이지엔,
자신이 대학 시절 겪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무너질 만큼
얇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소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 썼던 글이에요.
그 시절은… 아직도 저한테는 조심스러운 기억이에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시절, 저도 많이 무너졌어요.
그래서 이 글이 더 크게 와닿았어요.”
그날, 그는 책방에 오래 머물렀고
소연과의 대화는 점점 깊어졌다.
준혁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말없이 커피를 내렸다.
저녁이 되어 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
준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연아,
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너무 다른 표정을 짓더라.”
소연은 놀란 듯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 시절을 아는 사람이니까…
그냥, 잠깐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빛엔 묵직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지금의 소연이가 좋아.
그 시절의 너도,
지금의 너도…
모두 너니까.”
밖은 늦여름의 바람이 창을 흔들고 있었고,
책방 안엔 조용한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은
조용한 균열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을 붙잡으려 애썼고,
그 믿음은 조금씩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