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Seeker길을 찾는 사람] 3부: 영혼의 길을 찾는 구도자
해리 포터를 연상시키는, 그는 기억과 함께 이름조차 잃어버렸다. 그런 그를 세상에서는 무명無名 선생이라 부른다고 했다.
현빈은 무명이 이끄는 대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무명은 방 한 칸에 주방이 딸린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실내는 살림이 거의 없이 단촐했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가난해 보였지만 소탈한 모습이 오히려 신뢰감을 더해주었다. 그동안 현빈이 만났던 성직자와 퇴마사들이 탐욕스럽게 부를 누리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현빈이 방안을 살피며 기다리는 사이 무명이 차를 내왔다.
"드세요. 오랜 친구가 강원도 오대산 골짜기에서 캔 약초로 만든 차랍니다. 선생님께도 잘 맞으실 겁니다."
"아이구, 선생님이라뇨. 편하게 호칭하셔도 됩니다. 너무 동안이신 터라 아깐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현빈은 무명의 나이를 얕잡아 보고 편하게 대했던 일이 떠올라 손사래를 치며 예의를 갖췄다. 현빈도 이미 불혹의 나이였지만 무명이 사고를 당한 후의 세월이 사십일 년이라면 족히 그의 연배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너무 젊어 보이는 것이 주책이지요."
그는 허허 하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런데 대체 그놈에게 어떤 일을 당하신 겁니까?"
현빈은 한을 푸는 심정으로 그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도 쳐가며 이야기를 들은 후, 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그 녀석을 만나면 어떻게 하시려구요?"
"그냥 확 잡아서 혼을 내주어야지요!"
현빈이 씩씩거리며 하는 대답에 그가 더 크게 웃었다.
"어떻게 혼을 내주려구요?"
"아, 그거야 뭐,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어떻게든 해야지요! 잡아서 목을 비틀든 허리를 꺾어놓든……"
"녀석이 힘이 아주 세지 않던가요?"
현빈은 말문이 막혔다. 악마는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복수심으로 들끓는 마음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현실은 달랐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놈을 찾을 생각입니까?"
"어떻게든요."
"어떻게든요?"
"네! 어떻게든 꼭 찾아내고야 말 겁니다.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낼 겁니다!"
대답은 그렇게 용감하게 해보았지만 현빈은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무명과의 약간의 대화만으로도 현빈은 자기 생각의 약점이 금세 드러나 기운이 빠졌다. 악마란 놈을 대체 어떻게 찾을 수가 있단 말인가...
무명은 다시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 호기 하나만은 높이 사 줄만 하군요."
무명이 웃음을 멈추고 현빈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무명의 청명한 눈빛엔 세상 만물을 꿰뚫어보는 듯한 힘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타심통이 발현되는 건 아닐까, 현빈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째깍거리던 시계소리가 잠시 멈추는 듯한 그때, 찰나의 정적을 깨고 무명이 입을 열었다.
"신을 보는 눈을 갖추지 않고서야 어찌 악마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보는 눈이요?"
현빈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엇인가가 깨어나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습니다. 악마가 실재하는 영적인 존재라면 신은 더 크고 넓게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는 악마를 불러내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게 됩니다. 흑마술이라 불리는 거지요. 하지만 세상에 편재하는 신을 보는 눈을 갖춘다면 선하고 악한 모든 영적인 존재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악마를 보고 찾을 수도 있게 되겠지요."
현빈이 그의 말에 무릎을 탁 치며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을 볼 수 있을까요?"
"러시아의 대문호였던 톨스토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정신으로서, 사랑으로서, 만물의 근원으로서 이해되는 신을 믿는다. 나는 신이 내 속에 있으며, 또 내가 신 속에 있음을 믿는다'
"신은 세상 어디에나 계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을 발견하기 가장 쉽고 가까운 곳은 바로 자신의 내면이지요."
현빈이 의아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자신의 내면이요? 그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명이 잠시 찻잔을 들여다보더니,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를 보는 듯 말을 이었다.
"우리 마음은 스스로 자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광대합니다. 스스로 알고 있다고 여기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빈은 무명의 말을 들으며, 이제는 장인이 된 우향 선생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죠."
무명이 찻잔을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맑았던 차가 순간 소용돌이치며 흐려졌다.
"마음이 물과 흙이 섞여있는 물통이라고 해봅시다."
무명이 찻잔을 더 빠르게 흔들자, 차는 완전히 탁해졌다. 현빈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선생의 마음은 어땠나요? 한시도 쉬지 않고 통을 흔들어대며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희노애락과 같은 온갖 감정들과 생각들로요."
현빈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무명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 전만해도 공원에서 쓰러져 절규하며 신을 부르짖었던 그가 아니었던가.
순간, 다시 막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막내딸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 아내가 눈시울을 붉히며 밤을 새우는 모습들이 상상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런 장면을 떠올리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목이 메었다.
"이것 보세요."
무명이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현빈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무명의 말에 현빈은 부아가 치밀었다. 화가 치솟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되물었다.
"아니,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데 마음이 편안할 부모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현빈에도 불구하고 무명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그럴까요? 아이가 병원에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기 전까지는, 잠시 잊고 있었던 동안에는 어땠습니까?"
현빈이 순간 멈칫했다. 정말 그랬다. 무명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몇 분간은... 확실히 지금보다 훨씬 평온했었다.
"그런데 불편한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마음의 물통이 요동 치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흙탕물이 가득해졌지요."
무명이 손으로 찻잔을 가만히 덮었다. 잠시 후 손을 들어보니, 차는 다시 맑아져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제 알아차리셨습니까?"
현빈은 그제서야 무명의 말을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평상시에도, 잠자면서 꿈에서도 온갖 감정에 울고 흐느끼고 웃으며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지 않은가!
문득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 마음 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앉아 있는 걸까? 거대한 욕망의 뱀? 울분과 억압의 지렁이떼? 분노라는 이름의 괴물? 흙탕물이 걷히면 오히려 그런 무서운 것들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현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무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흙탕물이 걷히면서 두렵고 더러운 것들을 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지나면..."
무명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참모습과 근원으로서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군요."
무명은 깊은 내면의 샘물 속으로 침잠한 듯했다. 그러더니 차츰 목석같은 모습으로 변했고, 형체만 뚜렷한 그림자같은 모습이 되었다. 자아마저 사라진 듯한, 존재가 옅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현빈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눈을 비볐다. 동시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방안 전체가 고요해지더니,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정적에 잠겼다. 현빈은 자신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깊은 침묵 속에서 예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평온을 느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평화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명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번화한 도시의 뒷골목에 위치한 원룸이기는 했지만 깊은 적막이 감돌았다.
무명이 눈을 감은 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닦고 또 닦아서 아주 미세한 마음의 흐름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도 악마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물질적 존재보다 훨씬 더 미세한 것이니까요."
현빈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방금 전 경험한 그 고요가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그것은 분명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현빈은 그가 안내하는 대로 내면의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말이 여행이지 수행이나 다름없었다. 현빈은 당분간 그와 함께 암자에 머물며 개인적인 지도를 받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 현빈은 막내딸이 기적적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무명과 함께 고요히 앉아 마음을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신기하게도 그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마음을 향한 여정의 시작은, 그에게 새로운 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로드시커 3부 : 영혼의 길 - 구도자의 불꽃
- EP4 : 신과 악마를 보는 눈
<끝>
EP5에서 만나요.
<작가의 말>
『로드시커』는 욕망, 마음, 영혼—세 가지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욕망의 길에서 추락한 주인공은, 성공적으로 마음의 길을 걸어왔지요.
이제 영혼의 길을 걷고 있네요.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요?
독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나요?
자신을 돌아보며, 끝까지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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