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Seeker길을 찾는 사람] 3부: 영혼의 길을 찾는 구도자
일상으로 돌아온 후, 반년 이상 현빈 내면의 빛은 지속되었다. 처음처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깊은 여운으로 지속되었고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그의 내면적 변화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누구보다도 평온했으며 사랑과 여유로 충만했다.
현빈이 현실로 복귀를 한 후의 어느 화창한 가을날, 현빈은 민석과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의 찻집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둘이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다."
민석이 현빈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릴 때 이후, 언제부턴가 빛을 잃은 듯한 친구의 얼굴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유난히 생기 있고, 빛이 도는 맑은 얼굴이었다. 산에 들어가 수행한다더니 뭔가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짐작했다. 내심 반가웠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민석은 그런 성격이었다.
"그래. 그동안 참 많이 바빴지. 전보다 더 보기가 힘든 것 같아. 취업했다면서?"
현빈이 커피잔을 입으로 옮기며 물었다.
"그래. 반도체 쪽으로 가게 됐어."
"화학공학 박사학위 받더니?"
"교수 쪽으로도 알아봤는데 하늘의 별따기였지. 그냥 취업했어.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쌀이라잖아. 대우도 좋고 전망도 밝으니까."
"한다던 연금술은 어떻게 됐냐? 나노 기술 쪽으로 생각한다더니."
"당장 먹고사는 일이 석자라..."
둘은 함께 소리 내서 웃었다. 현실과 이상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통해서였을까.
"산에 들어간다더니 어떻게 됐어?"
민석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민석에게도 어릴 때부터 진리를 찾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늘 그런 주제의 책들을 탐독했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현실에 적용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현빈이 수행을 한다고 산속 암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놀라움과 부러움이 교차했었다.
"응. 할 만큼 하고 나왔어. 답을 구했지. 말로 다 하기는 힘든데..."
현빈은 친구를 위해 나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그의 깨달음에 의하면 우주만물은 거대한 하나의 흐름 속에 있었다. 궁극의 흐름 속에 수많은 작은 흐름들이 있었다. 따로 떨어진 흐름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흐름들이 서로 이어져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각각의 흐름들은 개성을 가지고 있고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고 했다.
민석은 여러 가지 이론들을 떠올렸다.
"네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어.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는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 주에 발생한 토네이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라고 해. 삶의 본질이 보이지 않는 흐름이라면, 어쩌면 우리들의 우연한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인 걸?"
현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때 바람과 함께 은행잎 하나가 카페 안으로 날아들었다. 은행잎은 그들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은행잎 위에는 작은 곤충 한 마리가 웅크리고 붙어서 죽은 체하고 있었다. 곤충은 광택이 나는 녹색으로 덮여있었다. 민석이 귀엽다는 듯 벌레를 이리저리 살폈다.
"무슨 벌레지?"
궁금해하는 민석에게 현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해 주었다.
"그거 딱정벌레야. 우리딱정벌레."
"니네 딱정벌레???”
“아니. 딱정벌레 종류 중에 우리딱정벌레라는 이름이야."
민석이 곤충 박사라도 된 듯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 딸이 곤충을 너무 좋아해서. 함께 다니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됐네."
그때 유리창 너머로 낮은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카페 앞 주차장에 초록의 둥근 차체가 천천히 멈춰 섰다. 폭스바겐의 녹색 비틀이었다.
"와아!"
민석이 탄성을 질렀다.
"왜? 뭔데?"
"녹색 비틀! 비틀이 딱정벌레라는 뜻이잖아. 게다가 녹색이라니! 이거 엄청난 동시성인 걸?"
"동시성?"
"응.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라고 하지. 정신분석 심리학자인 칼 융이 이야기했어. 그가 어떤 환자를 상담하고 있었대. 그 환자가 금색 풍뎅이에 관한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때 창문에서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금색 풍뎅이가 있더라는 거야.”
민석이 팔짱을 낀 팔꿈치를 탁자에 대고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라고 해. 인간의 정신과 외부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신비로운 끈이나 마찬가지지.”
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경험에 비춰봐도 이해가 돼. 정신과 물질 전체인 세계의 본질은 서로 분리된 물질이 아니라 경계를 정하기 힘든 흐름이니까. 서로 이어져서 신호를 주고받는 일이 생소한 것도 아니지.”
말을 끝낸 현빈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봄, 인수를 검토하던 회사가 있었어. 결론이 안 나서 ‘어떤 표지를 보여달라’고 마음을 모으고 잠자리에 들었지. 꿈에서 특이한 파란색 간판이 자꾸 깜박이더라. 다음 날 현장에 갔더니, 오래된 창고 간판이 딱 그 색이었어. 결정적인 단서가 됐고, 인수한 회사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
“정말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 건 아닌 것 같아.”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애들은 어때? 잘 크지?”
“그럼. 첫째는 벌써 자기 진로를 찾아서 한 길 진득하게 파고 있어. 근데 하필 컴퓨터 쪽이라 벌써부터 밤샘하고 난리야.”
“둘째는? 어릴 때 정말 귀여웠는데. 본지도 오래됐네.”
“여자애가 곤충에 미쳐서 맨날 산으로 들로 밖으로만 나다녀.”
현빈이 살짝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에는 애들을 키운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번에 몇 해 떨어져 지내면서, 또 내 마음을 비우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어. 나는 그저 애들이 원하는 대로 지원만 해주면 충분하다는 걸 알았어. 울타리만 쳐주는 거지. 나머지는 그 영혼들이 알아서 하는 거야.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고 부모의 몸을 빌어 세상에 나온 영혼들이니까.”
“너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민석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죽마고우로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듯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같은 나이지만 내심 동생처럼 느껴지는 친구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친구가 달라 보였다. 그는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크게 성장하면서 성큼성큼 앞으로 달려가는 거인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은 각자 서로의 길을 응원하면서 단단한 악수를 나눴다. 길은 달랐지만 자신의 내면에 깊이 새겨진 길을 걷는 것이 유일한 길임을 믿었다.
현빈은 인생의 매 순간을 주의 깊게 살폈다. 삶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도 그의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청명한 마음은 분별심보다도 직관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다.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일상적인 사건들 하나하나에 모두 깊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일상의 의미를 주의 깊게 보지 않기에, 사소하게 여기며 지나칠 뿐이다.
특히 그는 꿈을 꾸면서 경험하는 상징들을 주의 깊게 살핌으로써 현실적인 일들에 활용했다. 중요한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할 때, 그는 성급하게 생각으로만 판단하지 않았다. 원하는 답에 정신을 집중하고 잠들면 꿈에서 가장 가까운 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의식과 무의식의 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청정한 마음이었기에 현실적 측면들에 대해서도 지혜로운 판단을 내렸다. 다시 중소기업을 인수했고 차근차근 키워나가면서도 재물에 대해 집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합당한 만큼 재물들은 쌓여갔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일이 순조롭고 쉽게 성취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많은 우여곡절과 위기의 상황들이 닥쳤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얻은 교훈과 지혜를 디딤돌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현빈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종종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과거를 떠올리곤 했다. 누구도 쉽게 경험할 수 없었을 법한 많은 일들이 짧은 영상으로 압축된 듯 뇌리를 스쳤다. 그러다 그는 젊었을 때 좋아했던, 때 늦은 첫사랑인 여인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살짝 놀랐다. 그녀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소연이었지.
그리고 당시의 자신의 모습도 함께 떠올라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철없는 청년이었던가.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자신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빛과 하나 된 깨달음 이후, 그는 비상한 집중력이 생겼다. 혼란스러운 일들 앞에서도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또한 마음을 먹으면 다른 세계의 존재들을 찾을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존재들에 연연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장난친 악마를 찾지도 않았다. 그는 그들을 초월한, 훨씬 커다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부활.
그는 문득 부활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정말로 자신은 정신적인 부활을 겪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죽은 육신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 정신의 재생.
언제부턴가 그는 사춘기 시절의, 문학소년으로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서가 앞으로 다가갔다. 데미안과 싱클레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모든 갈매기들을 초월하고자 했던 갈매기의 꿈...
책들을 뽑아 어루만지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모든 책들이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고, 그는 그 이야기들을 자신이 직접 살아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로드시커 3부 : 영혼의 길 - 구도자의 불꽃
- EP6 : 부활
<끝>
EP7에서 만나요.
<작가의 말>
『로드시커』는 욕망, 마음, 영혼—세 가지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욕망의 길에서 추락한 주인공은, 성공적으로 마음의 길을 걸어왔지요.
이제 영혼의 길을 걷고 있네요.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요?
독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나요?
자신을 돌아보며, 끝까지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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