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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시커 3-7] 악마의 탈을 쓴 천사

[RoadSeeker길을 찾는 사람] 3부: 영혼의 길을 찾는 구도자



시간이 흘러, 현빈은 크게 성공한 기업인이 되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큰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으며 모든 존재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있었기에 그의 노력들은 더 큰 성공으로 되돌아왔다.


더더욱 세월이 흘러, 그가 노인이 된 어느 날,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20대 철없던 젊은 시절 돈과 물질적 가치만 밝히며 방탕하게 보낸 세월, 악마와의 만남과 거짓된 성공, 그리고 추락. 스스로 생명을 버릴 뻔한 잘못된 선택. 아내와의 만남을 통해 깨달은 마음의 법칙. 그리고 무명 선생과의 만남으로 이룬 참된 자아의 실현.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그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이루어낸 결과들… 많은 일들이 찰나의 기억으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그 모든 파란만장했던 일들이 돌아보면 한 순간의 꿈만 같았다. 더 이상의 여한도 단 하나의 집착도 없었다.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왜 사냐건 웃지요.’ 시 한 구절만으로도 그의 입가에 충만한 미소가 번졌다.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귀천(歸天).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구나.’ 그의 마음이 더더욱 편안해졌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歸天)」 중에서


그의 눈 앞에 싱그런 초록빛의 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강이 훤히 내다보이는 강가의 시골의 농가를 리모델링한 별장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차를 마시며,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였다. 희뿌연 안개와 구름이 먼산 허리를 감싸 안고 촉촉한 이슬비가 내리는 상쾌한 오후였다.


갑자기 하늘이 새까맣게 어두워지더니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그가 서있었다. 장대한 체격과 늠름한 자세, 젊고 잘생긴 얼굴도 옛날 그대로였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였다.


“어이. 친구 오랜만일세! 그간 잘 지냈는가? 자네도 어느새 꽤나 늙었구만. 그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주름이라니…… 꽤 오랜 세월이었지? 나한테는 눈 깜짝 할 만큼 금세 지나간 시간에 불과했지만 말이야!”


현빈도 처음에는 흠칫 놀라는 듯했다. 하지만 그도 이미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이내 안정을 되찾은 그가 대답했다.


“그렇구먼. 자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야.”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네. 그런데 왜 그런지 자꾸 자네 생각이 나더라구. 그래서 찾아와봤네. 지난번엔 꿈에 나타나느라고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던 게 아쉬웠었지. 컬컬컬.”


놈의 말투에는 조롱과 비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는 현빈을 보고서 오히려 악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악마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질렀다.


“어이! 이거 보라구! 지금은 상황이 좋아졌다지만. 과거를 떠올리면 화가 나질 않나?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텐데? 내가 다시 또 얼마든지 훼방을 놓을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런 악마의 반응 때문이었을까. 현빈의 반응은 더더욱 차분해보였다. 그는 오히려 입가에 엷은 미소마저 띄울 지경이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을 걸세. 안 그래도 마침 과거를 회상하던 중이었다네. 지금 나의 모습을 보게. 나는 자네 덕분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크게 성공할 수 있었지. 나는 큰 흐름을 따라 내 영혼의 길을 걸었어. 진정한 강함이란 영혼의 길을 따르는 데서 생기는 법이야.”


현빈의 말을 들으며 악마는 점점 더 풀 죽은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그런데 솔직히 한 번 생각해 보게. 자네는 정말로 자신이 악마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자네 덕분에 헛된 것에 집착하는 나 자신을 떨쳐냈다네. 또 그저 작은 성공에 안주하려는 나 자신을 버리고 변화될 수 있었지. 나는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고 참된 영혼의 길을 걸어서 진정한 성공에 이르렀지.


“그만! 이제 그만해! 너는 희한한 방식으로 나를 고문하고 있어!”

악마의 소리치는 입술이 기괴한 모습으로 비틀렸다. 머리를 양 손으로 감싸고 온몸을 공처럼 웅크려 바닥을 굴렀다. 현빈의 말이 악마를 괴롭히는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괴롭혔다. 악마의 반응에 현빈은 웃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말을 계속해나갔다.


“나는 이제 자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지경이네. 자네는 나를 도운 신의 사자일지도 몰라. 너는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게 하는 존재지. 악마가 아닌 천사일지도 모른단 말일세.”


“자네 말이 맞아. 많은 인간들이 ‘나는 누구인가’ 라고 자문하며 혼란스러워하지. 나 역시도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네.”


말을 이어가는 악마의 모습이 점점 더 초췌하게 변하며 그 특유의 번들거리는 빛이 사라졌다. 어느샌가 늠름한 젊은이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새까맣고 꼬리 달린, 추한 악마의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


“대체 나는 뭔가? 내가 방해했던 많은 인간들이 인생을 망쳤지. 그들 중 일부만이 자네처럼 되었다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내심 혼란스러웠어. 어째서 나의 의도와는 달리 훨씬 더 나아지는 인간들이 있느냔 말이야! 도대체 나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일까, 아니면 악마의 탈을 쓴 천사일까?”


“난 너의 이름을 알아.”

현빈이 그런 악마의 모습을 보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메피스토펠레스.”


이름을 들은 악마는 괴성만을 남긴 채 자취를 감추었다.

몰려왔던 먹구름이 조금씩 물러가고 있었다. 그의 자취가 사라진 자리엔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쳤다.




내 인생에서 악마들을 몰아내면 천사들마저 도망가지 않을까 두렵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로드시커 3부 : 영혼의 길 - 구도자의 불꽃

- EP7 : 부활

<로드시커 전체 끝>


로드시커 전체의 에필로그가 남아있습니다.

꼭 봐주세요. 1부에서 풀었던 모든 떡밥이 풀립니다. ^^



<작가의 말>

『로드시커』는 욕망, 마음, 영혼—세 가지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욕망의 길에서 추락한 주인공은, 성공적으로 마음의 길을 걸어왔지요.

이제 영혼의 길도 끝나가네요.

에필로그에서, 그는 무엇을 보여주게 될까요?

꼭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세요.


독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나요?
자신을 돌아보며, 끝까지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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