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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시커 파이널 에필로그]

로드시커 1,2,3부 최종회

로드 시커 [끝]



에필로그



아주 짧은 순간, 아니 어쩌면 영원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수한 빛 알갱이들이 온몸을 관통하는 듯했다. 미처 다 떠올리지도 못할 것만 같은, 머나먼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밑바닥까지 일일이 훑고 난 뒤에야 현빈은 눈을 뜰 수 있었다.


잠깐 동안, 어리둥절하던 그는 그곳이 어디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든 영혼이 마땅히 거쳐야 할 곳……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제서야 다시 돌아왔구나!’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먼 여행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의 젊은 시절 있었던 끔찍한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생명은 스스로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던 그 때, 그는 자살을 선택한 이들이 감당해야 할 미래를 보았다. 다행히도 악마의 농간으로 선택했다는 정상이 참작되어 다시 이승으로 되돌려 보내졌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의 길이 어디론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 중간쯤 커다란 문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문의 뒤편은 위를 향한 계단으로 이어졌고 그곳은 또다른 세계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수많은 영혼들이 줄지어 길을 따라 걸었다. 그들은 문 앞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곳에서 자신을 비춰보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것을 지켜봤지만 육중한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이 열리지 않자 문열기에 실패한 영혼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길을 따라 걸었다.


현빈은 어쩐지 사람들을 따라 걸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영혼들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곧 거대한 문 앞에 다다랐다. 문 옆에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을만한 거울이 걸려있었다.


그는 문득 오십 년도 더 된, 빛 바랜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젊은 시절, 한 바텐더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문의 거울에 관한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으로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은 겉보기엔 일반적인 거울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어릴 적, 젊을 적, 그리고 노숙한 지금의 얼굴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듯한 묘한 인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드드드드드.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의 뒤에 줄 서 있던, 또 문을 지나쳐간 주위의 영혼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문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섰다. 갑자기 온 우주의 오케스트라가 한자리에 모인 것처럼 큰 소리로 팡파르를 울렸다. 어리둥절하며 쭈뼛거리며 서있는 그의 직감에 메시지가 내리 꽂혔다. 문이 열리는 일은 전 우주를 통틀어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고 영혼이 다음 단계로 올라서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소식이었다.


계단은 더 이상 걸을 필요가 없다는 듯 저절로 움직였다. 그는 자동적으로 다음 세상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제 돌아왔는가? 환영하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의 옆에 서있는 것은 우향이 아닌가!


“아이구! 장인어른!”

현빈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니, 이 사람. 뭘 그렇게 놀라나? 내가 있으면 안 될 데라도 있다는 말인가?”

우향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지난 생에서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영혼으로서의 모든 기억이 잘 나지는 않겠지. 바로 이전의 생에서나 자네와 내가 장인과 사위 사이였지만 항상 그랬던 건 아니라네. 영혼의 차원에서는 모두 형제나 같은 셈이지.”


“이제 오셨습니까?”

또 다른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무명이었다.


“아니, 무명 선생님!”

현빈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명은 그가 수행을 마친 후에는 직접 볼 수 없었다. 다만 간접적인 소식에 의하면 현빈이 죽기 얼마 전까지도 늙지 않은 모습으로 건재하다는 소식만 접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소식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서 뵙습니까?”


무명은 여전한 얼굴로 그저 싱긋이 웃고 있었다. 옆에서 우향이 대신 대답했다.


“이분은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네. 천사이시지.”

“네?”

현빈의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이분은 여기에도 계시고, 지상에서도 계시고, 음… 또… 지상에서도 여기 저기에 계시다네……”


우향의 말에 현빈은 문득 메피스토펠레스를 떠올렸다.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천사의 모습을 한 악마도 있고, 진짜 천사도 있고……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의미가 없는 건가요? 그렇다면 악마의 모습을 가장한 천사도 있겠군요?”


무명의 이름을 빌린 천사가 대답했다.


“세상에서는 나누기를 무척 좋아하지요. 한 그루의 나무가 뿌리, 줄기,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고 해서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닌 것처럼, 근원의 차원에서 모든 존재는 하나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너와 나를 나누듯이 선과 악도 나누었습니다. 사실은 절대적인 선도 악도 없습니다. 모두가 변화해가고 발전해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천사의 말은 너무나도 청아하게 울렸다. 그것은 목소리가 아닌 근원의 소리였다. 애써 집중하지 않아도 소리와 뜻 하나하나가 뇌리에 박히듯 입력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때론 선이 악의 역할을 하고 또 악이 선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현빈님도 이미 충분히 경험하셨지요. 사람들은 길하고 복된 결과만을 바라지만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더욱 크게 성장하는 법입니다. 세상에 진정한 길흉화복이란 있지 않은 것이지요. 진짜 악마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친구들은 아직 자기 정리와 공부가 덜 된 존재들이지요.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충분한 시간과 경험을 통해 배움이 쌓이면 그들도 훨씬 더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현빈은 무명 천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작은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이 문으로 들어오지 못한 영혼들은 정말 지옥에 가게 되나요?”


현빈의 질문에 우향과 무명이 함께 껄껄거리며 웃었다. 우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상상하는 지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네. 어디선가 잘못 와전된 이야기를 듣고 온 모양이구만.”

“그럼 문으로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길을 따라가서 도착하게 되는 곳은 어디죠?”

“그들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네. 진정한 자신의 길을 걷는데 소흘했기 때문이지. 지옥이라……”

우향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자네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네. 세상으로 되돌아간 그들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지 못한다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들은 진흙탕처럼 세상을 뒹굴다 다시 돌아오고 내려가기를 끝없이 반복하겠지. 그들에게는 그런 세상이 지옥인지도 모르지.”


우향은 현빈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동안의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현빈이 주변을 유심히 살피던 중 우향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선 뭘 하면서 지내죠?”

“이 사람! 세상에서 하던 버릇이 달라지지 않았구만! 힘든 여정을 마쳤으니 당분간은 좀 쉬도록 하게. 지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옆에서 빙긋 웃고 있던 무명 천사가 시계를 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급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달려나가며 중얼거렸다.


“정말 인간이 부럽다니까!”




<로드시커> 1,2,3부가 완전히 끝났습니다.

1부 1편부터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신다면 정말로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브런치라는 매체 특성상 정주행 하기 힘든 플랫폼이고, <로드시커>라는 소설이 연재에는 조금은 맞지 않는 성격이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의 필력이 모자란 부분도 있었겠지요.


아울러 지금은 별도 매거진으로 글을 이어나가고 있는 [로드시커 외전]을 함께 보신다면 <로드시커>의 확장된 세계관을 더욱 즐기실 수 있으실 수 있을 거예요.


<로드시커> 연재는 끝났지만 다음 금요일 연재일(10.24일)에는

각각의 시점에 맞게 <로드시커 외전> 을 합본한 <로드시커 페이퍼북 버전> (아직 출간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조금 구성이나 내용에 약간의 변화가 있습니다)을 올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로드시커> 끝까지 읽어주신 분 계시다면 이글 댓글에 전체 내용에 대한 리뷰를 달아주세요.
약소하지만 좋은 내용 3분을 채택해서 커피쿠폰 보내드릴게요(카카오톡 선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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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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