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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진 Dec 05. 2023

첫 *


 

 

눈을 오렌지 빛이라 말해도 될까.

여튼 내 눈에 눈은 오렌지처럼 겉은 거칠게 보이지만 속은 물컹한 과육으로 이루어진 열매 같았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눈이 그렇게 보였다는 게 —사실 난 색맹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반갑게 내리는 눈이 맛있게 느껴졌다.


첫 눈은 그런 것이다. 오랜 시간 대기에서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마침내 땅 위로 떨어지는 결정체다. 겨울이 오기까지 땅의 형태는 여러 번 바뀌었다. 한 번은 매화나무에 꽃이 폈고 또 한 번은 철쭉이 뜨거운 햇살을 맞으면서 피어났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고 모든 열매가 떨어져서 사라질 때까지.


無. 모든 결실이 존재하지 않고 나타나지 않아도 나름대로의 독자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으면서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버티지 않고 수긍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예컨대 희망, 무력감, 두려움, 적막과 인고의 시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결과에 대한 기다림 또한 그렇다.


하지만, 첫 눈은 왔고 잠시 멈춰서 천천히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하겠다.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 불투명해 보일 때 눈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아주 붉고도 윤기 있는 형태로. 일순간 화살이 가슴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부끄러웠다.‘ 발 밑에 떨어진 눈 한 송이의 무게도 가늠할 수 없었다.


첫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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