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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Sep 18. 2022

생활체육 복싱대회 후기 2

패배

시합 전


 저번 시합의 경험이 한 번 있어서인지 저번보다 준비를 열심히 해서 인지, 시합장으로 가는 길이 딱히 긴장되지 않았다. 시합장에 도착하고서도 그리 크게 긴장이 되지 않았던 걸 보면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역시 한 번의 경험이라도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저번 대회(2분 3라운드)와 달리 2분 2라운드인지라 생각보다 내 차례는 빠르게 다가왔고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시합 전 관장님과 짧게 미트를 폈는데 평소보다 많은 양의 땀이 흘러내렸다. 몸이 긴장을 한 것이다. 내 차례 바로 직전 시합이 진행되고 있을 때 나는 운영진의 안내에 따라 나와 맞붙을 상대 선수 옆에 나란히 앉아 헤드기어와 글러브, 마우스피스를 낀 채로 대기했다. 상대 선수는 덩치가 꽤나 컸고 나랑 키도 비슷했다(저번 시합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75kg가 정말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는 이 시합을 개최한 체육관의 관원으로 운영진과 상당히 친했고, 홈그라운드에 아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긴장된 모습 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예전 시합 상대도 그 시합을 개최한 체육관의 관원이었다(나는 대진운이 참 좋은 것 같다. 젠장). 지켜보던 시합이 끝나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링 위로 올라가기 직전에 관장님이 윗옷을 바지에 넣어주셨다(아마 로우 블로우와 바디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윗옷을 바지에 넣어 입어야 한다 / 출처 : 지마켓




1라운드


 링에 올라가자 저번 시합 때처럼 다리에 힘이 빠지지는 않았다. 다만 링이 너무 작다 보니(저번 시합장은 물론 우리 체육관의 링보다 훨씬 작았다. 아웃복서인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이었다) 심판과 상대, 그리고 나. 고작 3명으로 인해 가득 채워지는 공간이 상당히 어색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심판의 주의를 듣고 상대 선수와 글러브를 터치했다. 3, 2, 1 땡! 준비 사운드와 함께 공이 울렸다. 시작부터 기선제압을 해라는 관장님의 말씀대로 먼저 원투로 치고 들어갔다. 손에 감기는 큰 타격감은 없었지만 상대의 얼굴이 크게 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상대 선수를 향해 치고 들어갔다. 원투로 때리다가 빠지고 다시 원투 원어퍼, 위아래, 카운터. 상대가 가까이서 연타를 치면 가드를 하다가 왼훅으로 상대를 타격하고 다시 내 공격을 이어나갔다. 상대를 몇 번 코너로 몰았으나 큰 타격은 없어 보였다. 나 또한 상대의 공격 시 가드를 튼튼하게 하며 큰 정타를 허용하지 않았고 중간중간 스스로 스탭을 살리며 또 세컨의 말대로 (겁나 좁지만) 링을 돌며 코너에 몰리지 않도록 했다. 링이 좁다 보니 잠시 스탭으로 멀리 돌며 체력을 보충할 여유가 없었다. 한 두 발짝 걸으면 바로 상대와 대치였고 계속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주먹이 더 오가고 지친 나는 상대를 끌어안았다. 다행히 공이 울렸고 1라운드가 종료되었다. 나는 지친 상태로 내 자리로 돌아와 물을 마시고 세컨의 지시를 들었다(나중에 찍은 영상을 보니 상대는 나만큼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지쳐있는 나에게 관장님은 머리를 맞대며 "정신 차려! 할 수 있다!"를 외치셨다. 관장님 말씀대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깐 링에 기대 있었는데 벌써 준비 사운드가 울리고 심판이 세컨아웃을 외쳤다(나중에 계산해보니 휴식시간은 대략 40초였다). 2라운드 관장님의 주문은 원투 빠지고 원어퍼, 숄더 카운터 원투였다.

마땅한 짤이 없는 관계로 필자가 직접 상황을 그려보았다




2라운드


 체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공이 울리고 상대와 대치를 하는 순간부터 허벅지가 마치 돌처럼  무겁고 딱딱해진 느낌을 받았다(관장님의 주문인 치고 빠지기를 시전 하기가 어려웠다). 체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링이 너무 좁다 보니 무리해서 공격을 했던 것이 이유였을까. 어찌 되었든 나는 싸워야 했다. 원투 빠지고 원어퍼, 상대가 붙자 가드를 굳힌 뒤 왼훅을 먹였다. 다시 위 아래를 먹이고 빠지는 나에게 상대는 양어퍼를 치고 오른 훅을 먹였다. 세컨의 말대로 링을 돌아 나온 뒤 위아래를 들어갔다. 그러나 지쳐서 인지 왼발이 깊숙이 들어가지지 않았고 뒷손은 힘을 잃고 치고 나서 밑으로 툭 떨어졌다. 세컨의 말대로 코너로 몰리지 않게 다시 링을 크게 돌아 나왔다. 재정비를 하며 가드를 올린 채 스탭을 뛰었다. 다시 한번 위아래를 쳤지만 멀었다. 왼발이 더 깊숙이 들어가거나 거리를 좁히며 잽잽 아래를 쳤어야 했다. 2라운드부터 상대는 집요하게 나의 옆구리를 노리기 시작했다(나중에 찍은 영상을 보니 계속해서 밖에서 들려오던 "옆구리!"의 외침은 상대 세컨이었다). 조금씩 상대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정타를 몇 번 허용했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서 나는 원투 빠지고 원어퍼를 시전 했다. 그러게 치열한 공방 후, 다시 내가 상대를 코너로 몰아붙였다. 잠시 후 서로 지친 상대와 나는 링 중앙에 몸을 붙이고 서 있었다. 내가 다시 힘을 내 원투를 던지고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어느 시합에서 이노우에 나오야가 지친 순간에 가드를 내린 채 그냥 투만 몇 번 먹여서 상대를 ko시킨 순간이 기억났다) 조금 더 힘을 내 투를 세 번 던졌다. 조금씩 상대가 밀려났고 다시 투를 먹였다. 다시 상대와 거리가 좁아지자 상대를 끌어안았고 심판은 나에게 안지 마라고 하고 상대에게는 머리를 들라고 지시했다.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고 바로 원투로 치고 들어갔다. 다시 상대와 난타전을 하며 나와 상대는 서로 투와 훅으로 정타를 허용했다. 시합이 끝났다. 

본 사진의 시합은 아니었다 / 출처 : the japan times

 



패배와 느낀 점


 판정패였다. 심판은 청코너의 손을 들어주었다. 관장님의 아쉬운 탄식이 들렸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상대와 상대 세컨에게 인사를 한 뒤 링에서 내려왔다. 체력을 쏟아붓다 보니 목이 바짝 말라 무척 건조했다.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했다. 관장님이 1라운드는 다 이겼는데 2라운드에서 체력이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2라운드 때 너무 힘들어서 세컨말대로 치고 빠지기를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시합이 끝나자 후련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저번 시합과 달리 얼굴과 뇌가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코피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아마 헤드기어를 바꿔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턱을 당겨 중심을 낮추고 가드를 잘하다 보니 얼굴에 크게 정타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그것만으로도 뭔가 기분이 괜찮았다. 분명히 저번 시합보다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합에서 나의 주된 목표는 가드 중심 스탭. 이 3가지였는데, 사실상 스탭은 거의 잘 쓰지는 않았으나 중간중간 (무의식 속에서) 짧은 순간 상대와 대치할 때 스탭을 뛰었었다. 그리고 가드와 턱 당겨 중심 낮추기는 확실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옆구리를 허용하기도 했고(시합이 끝나고 5분 정도 지나자 왼쪽 갈비뼈가 부어오르며 통증이 시작됐다. 병원에 가보니 부서지거나 금이 간 것은 아니고, 갈비뼈 연골에 타박상을 입은 것이라 알려줬다. 하지만 꽤나 아파서 당분간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맞으면서 상대를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계획대로 얼굴 정타를 크게 맞고 머리가 심하게 들리는 일은 없었다.

 저번 시합에는 tko패였지만 이번에는 판정패였고, 가드도 저번보다 잘했다. 패배한 것이 아쉽지만, 후회도 없고 기분도 나름 괜찮았다. 다음에 나가면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차피 1승 할 때까지 도전할 거라 젠장 끝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번에 다시 한번 몸소 느꼈다. 복싱은 습관이다. 습관은 곧 나도 모르게 나오는 무의식이 된다. 무의식이 몸에 베이도록 반복이다. 그리고 시합에서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체력이다.

습관이고 무의식이다 / 출처 : medium.com-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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