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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Sep 24. 2023

부상

부상당하고 드는 생각들

 부상

 엊그제 오전, 스파링이 있었다. 오전반에는 주로 오래 다니신 잘하는 사람들(흔히 말하는 고인물)이 많이 있어서 그중 한 분과 스파링을 하게 되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타 한 번 제대로 때리지 못하다가 도리어 카운터에 제대로 한 방 얻어맞고 왼쪽 얼굴에 부상을 입었다. 몸무게, 키, 실력, 모든 것이 나보다 월등히 컸던 상대라 힘들 것은 예상했지만, 마우스피스에 딴딴한 코보호 헤드기어까지 끼고 있었어 맞는 것에 대한 별 걱정은 없었는데(실제 시합에서 날아오는 진심펀치들을 맞아도 딴딴한 코보호 헤드기어를 낀 이후로는 얼굴이 아픈 적이 없었다) 실제로 보이지도 않는 카운터를 맞은 순간 갑자기 왼쪽 송곳니를 비롯해 광대뼈와 안와, 눈알에 마취주사를 맞은 듯한 신경통이 느껴졌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손을 들어 스파링을 중지했는데,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눈알에 서려있는 핏줄이라던가 세수할 때마다 아직 잇몸의 뼈가 아픈 것을 보면 참 어지간히 제대로 맞았구나 싶다. 가볍게 하자고 시작한 스파링이었는데, 하다 보니 흥분도 되고 몸무게 차도 근 15킬로 이상은 차이가 나다 보니 안전보호구를 차고 맞아도 그 충격이 심했던 것 같다. 스파링을 하면서 많이 맞아보긴 했지만, 이런 통증과 부상은 처음이기에 기분이 좀 그랬다. 코피는 일상이고, 스파링을 하다가 손뼈가 부러지고, 시합을 하다가 갈비연골이 나가도 봤지만 기분이 그렇게 다운되지는 않았었다. 아무래도 이번엔 얼굴에 생긴 부상이기에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열심히 한 것 같아도 막상 실력이 늘지 않는 현실에 쳐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굳이 이렇게 몸 상해가며 할 정도의 일인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진 출처 : 뽐뿌

 나도 그만큼 열정이 식은 것 같다. 처음에 복싱을 할 때만 해도 진지한 생각 없이 그냥 열심히 했었다. 재밌었고 복싱이라는 격기를 수련한다는 것 자체가 멋있었다. 가끔 잘한다는 소리까지 들어서 스스로가 진짜 잘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링에 올라가 스파링을 해보니 나는 초보나 다름없었다. 이후로 더 많은 시간을 수련하게 되었고, 스파링도 하고, 그러다가 시합을 나가 흠씬 두드려 맞아도 봤다. 좋아하는 선수가 생겨서 따라 하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복싱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다시 시합을 나가서 지고 또 졌다. 도전하고 도전해도 지고 또 진다는 것은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으며, 신용이 없으면 존경이 없다던 고 최배달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반대로 생각해 아무리 실천을 한다고 해도 그 실력을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신용을 얻지 못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공부는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는 놈이 이기는 거라 했던가,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공부해 봤던 사람으로서 그게 정답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몸소 깨달았다. 운동도 그렇다. 열심히만 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은 기본으로 깔고 가되, 그것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운동신경과 센스, 운동지능, 체력 등이 필요하다. 정말 어려운 것은 과연 어느 지점까지 노력하고 실천해야 본인의 타고난 센스나 지능을 파악할 수 있고 또 증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번 부상을 통해서 내 노력과 열정, 타고남의 부족을 느꼈다. 무엇보다 이런 아픔과 증명이 없는 모습 속에서 내 마음이 뜨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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