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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Aug 01. 2021

Veni, Vidi, Vici !! (한라산 등반기2)

2021년 5월 2일 (일) / 20일 차

 백록담이라고 쓰여있는 비석에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한라산 등반 인증서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줄이 한참 길다.


 어차피 안갯속 정상이라 아쉬움에

 인증서라도 받아야겠다고 한참 줄을 섰는데,

 갑자기 구름 속 파란 하늘이 다시 얼굴을 비췄다.

 백록담이 바라다보이는 울타리는

 정상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오래 버티질 못했는데

 파란 하늘이 비추자 사람들이

 기다리던 줄을 포기하고 쏜살같이 올라간다.

 나도 질세라 줄은 내팽개치고 

 백록담을 눈으로 담고자 뛰었다.


 구름이 서서히 가시면서

 마법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파란 하늘이 비추자 마법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선천성 심혈관 질환이 있다.

 심근 비대증이란 희귀병이다.

 서른이 넘어서야 내 심장이

 남들보다 1.5배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였나,

 어릴 때부터 조금만 운동을 해도 금방 숨이 차더니

 군대에서 행군할 때는

 남들보다 갑절이 힘들었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10분 이상 뛰면 체력이 고갈될 정도다.


 물론 운동 부족 탓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심장 영향도 큰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한라산 정상에

 오를 거라고는 큰 기대를 안 했다.

 올라가다 힘들면 포기하려고 생각도 했다.


 젊은 시절, 관악산 등반을 하다가

 며칠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지라

 무리한 산행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다는 양가감정도 들었다.

 

 더 나이 들면 더 힘들 텐데,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오를 수 있을까.

 그래서였나. 추위와 무릎 통증을 이겨내고

 이 순간을 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올랐다.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보니 눈물이 났다.

 평생 못 잊을 풍경이다.  


 서른아홉 나이에 처음 오른

 한라산 정상. 나는 해냈다!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언제 또 오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랑스럽게 정상 인증을 했으니 됐다!


 오늘은 스스로가 대견했다.


Veni, Vidi, Vici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2, 하산을 시작한다.

 거의 두 시간을 정상에서 머물렀다.

 어두워지기 전 하산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정상에서 내려가는 시간은 2시 반으로 통제한다.


 내려가는 길은 부담이 없을 줄 알았는데

 무릎이 시큰거려 계단을 내려올 수 없었다.

 옆으로 걷다가 뒤로 걷다가 천천히 걷다가

 별별 방법을 다 쓰며 천천히 내려왔다.


 몸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무리를 해서 그런가 보다.      

 성판악 코스는 관음사 코스보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았다.


성판악 코스 하산길


 정상 인근은 돌무더기로

 햇살을 피할 곳이 없었고,

 성판악 코스 마지막 쉼터인

 진달래 대피소에서부터는

 평범한 등산 코스와 다를 바 없었다.  


 계단 지옥인 관음사코스에 비해

 난이도는 약했다.

 제대로 풍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관음사 쪽으로 올라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

 

 오르는 데 4시간이 약간 안 걸렸는데,

 내려가는 길은 4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픈 무릎 때문에 제대로 내려오지

 못한 것도 있고, 거리도 꽤 길었다.

 걱정했던 심장이나 고관절에 무리는

 덜 갔고, 무릎인대가 복병이었다.


 그렇게 종일 약 20km를 걸었다.

 나이 들어서 아이들과 함께 꼭 올라보고 싶다.

 그러려면 몸 관리를 잘해야지. 


 건강하게 오래 살자!! 


한라산 등정 인증서와 내가 오른날 한라산의 저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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