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7. 당신은 아픈 차례가 아닙니다.
병원 번호표
병원을 멀리하고 싶다.
아플까 겁나니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아픈데 마냥 기다리는 것이 싫다.
내가 아픈 것이 이곳에 와 있는 사람들의 선착순만큼 또는 내가 뽑아 접수한 순서만큼이 아닐 텐데 사람들은 착하게 순서를 참 잘 지킨다.
당연한 것인데 이 번호표 숫자가 아픔까지 순서화한 것 같아 화아악 구기고 싶은 심정이다.
밤새 아팠다.
우리 집은 내가 아프면,
너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다.
다 아프단다.
내가 무덤에나 가야 아! 진짜 아팠구나 할 거다.
대한의 주부들 모아놓고 손들어하면
나 같은 사람
80% 는 넘을 거라 내! 장담한다.!
병원에 와 있다.
아픈 게 싫다. 누군 아프고 싶냐! 하겠지. 그니깐,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는 중이다.
이곳은 또 선 진료가 있다. 의사 얼굴을 보기 전
이 증상이냐? 저 증상이냐? 언제부터 그랬냐? 면접관의 질문에 착하게 상세히 대답하고 나니 내가 진료는 받을 수 있는 건지 혹시 탈락은 아닌지 순간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든다.
이미 예상한 5번 진료소가 정해졌다.
지난번 끔찍하게 아파서 왔던 증상이며 병원 효율로 내 차트를 갖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진료할 거란 것은 당연한 예상이다. 말 안 해도 안다.
대한의 산업혁명과 현대화, 최첨단 시대를 살아온 나는 그쯤은 자동이다.
합리적 효율로 점차 세밀해지는 사회구조를 당연하게 습득해 왔다.
그래야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지.
번호표를 뽑아 순서를 기다리는 시민의식과
"저기요! ", "이모! "보다는 벨을 누루며 전광판에
25번 팅!, 56번 팅! 하고 뜨면 '나구나' 하고 차례에 임한다.
사람이 없어도 잘한다.
건을 잡고 빨간 불빛에 바코드, 큐알코드를 기계가 원하는 위치에 공손한 손짓으로 잘 맞춰 누르고 내 금전의 카드를 명령에 맞게 기계의 입맛대로 잘 밀어 넣어준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효율이라 하며 산다.
합리적이다 여기며 산다.
인간계를 벗어나 과학계에 복속되어 살고 있다.
인간의 무질서는 과학의 챕터 1, 챕터 2로 나눠 사회와 인간의 역할을 품격 있게
매뉴얼 하여 질서를 따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무질서한 인간의 생로병사는 상담, 차트, 사전검사 등에 시달리면서 아픔에 움켜쥔 번호표에 묘한 불쾌감이 쌓이고
아픈 통증을 참아내며 내 차례가 확인될 번호표와 전광판을 매달린 과자 따먹기의 달리기처럼 점점 가까워지는 숫자들을 헐떡이며 기다리고 있다.
띵동! 띵동!
50번 수납하세요.
효율과 합리. 질서가
때론 인정머리가 머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