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병원에서 '바이탈(Vital)과' 하면 대표적인 과들이 있다. 내과,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생명과 직결된 의료를 행하는 과가 '바이탈과'이다. 좀 더 쉽게 얘기자면 '기피과'들이 주로 '바이탈과'이기도 하다. 바이탈을 다루는 파트답게 큰 병원에는 각 과마다 중환자실 자리가 배정되어 있다. 그래서 중환자실 환자들은 대부분 '바이탈과'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내과 환자들이 중환자실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다음으로 많은 중환자가 있는 과는 외과이다. 외과계 중환자실도 항상 '풀베드(full bed)'이다. 병동 환자들과는 다르게 중환자실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부담스럽다. 우선 처방을 내야 하는 항목 개수부터 다르다. 처방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신경이 쓰이고 손이 많이 간다는 의미다. 환자에게 붙어있는 모니터링 종류도 훨씬 많다. 차라리 모르면 좋겠지만,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바뀌는 지표들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중환자실 주치의 시절에는 모니터에서 이상한 기계음만 잠깐 울려도 고개가 홱홱 돌아갔다.
파견 병원은 중환자실 주치의가 따로 없다. 밤엔 파트 당직이 병동과 중환자실을 같이 보는 셈이다. 덕분에 이번 주는 파견을 오자마자 '바이탈'스러운 당직을 맞이했다.
수술 후 대량 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실한 환자였다. 하지만 바쁜 당직을 만들어준 사유는 출혈이 문제가 아니었다. 밤 10시. 부정맥으로 환자 맥박수가 갑자기 160회를 넘어갔다. 심전도 상 리듬은 PSVT(발작성 상심실성 빈맥)였다. 보통 이런 경우엔 '아데노신(adenosine)'이라는 약제를 투약한다. 외과에서 자주 쓰는 약이 아니라 처방을 내면서도 찜찜했다. 다행히 환자는 투약 직후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었지만 바로 리듬이 돌아왔다.
맥박수가 밤새 잘 유지되었으면 좋았었겠지만, 새벽 1시. 다시 같은 부정맥이 발생했다. 출혈로 혈압도 낮았다. 승압제를 달고 있었고, 처음 아데노신을 투약할 때 혈압이 무섭게 떨어진 이벤트가 마음에 걸렸다. 다시 한번 아데노신을 줘도 될지 내과, 응급의학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자냐"라는 카톡에 아무도 회신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실례를 무릅쓰고 응급실 당직 교수님을 찾아가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리곤 한 번 더 투약하기로 결정했다. (의료 행위에 대한 '2인 이상의 의사 동의'는 생각보다 든든하다.) 용기를 가지고 당직의 '나' 한 명과 간호사 선생님들 5명이 대기하며 아데노신을 투약했다. 또 한 번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환자는 갑자기 흉통을 호소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탔다. '다시 혈압 올라오겠지, 흉통도 호전되겠지'라고 중얼거리면서 태연한 척했지만, 이번엔 내 심박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환자 흉통이 호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초. 다행히 환자는 '금방' 괜찮아졌다. 이제야 그 30초를 '금방'이라 말하지만, 그 당시에는 '영겁의 30초'였다. 전전긍긍의 30초를 견디면서 환자가 괜찮아지고 내뱉은 나의 첫마디는 '무서워서 이 약 못쓰겠다.'였다. 중환자실에서 혼자만 의사였던 그 상황에서 너무 버거운 약이었다. 환자는 두 번째 아데노신에는 정상 리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순환기 내과 교수님까지 그 새벽에 연락을 드리고 나서야 다행히 상황은 해결되었다.
중환자실 환자 한 명이 안 좋으면 환자 침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무슨 검사를 할지, 무슨 약을 쓸지, 노티를 할지 말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그러다보면 책과 사람, 구글의 도움으로 결국 해결은 된다. 다만 그 고민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무겁고, 무섭다. 나의 결정이 환자의 생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민의 무게를 몇십 배는 더 늘려준다.
몇 주전 청첩장 모임에서 만났던 내과 전문의 선배는 본인의 레지던트 시절이 어땠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가장 찬란했지만 다신 돌아가기 싫은 시절." 생사를 오가는 환자 앞에서 모든 간호사들이 본인만 쳐다보는 그 눈빛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밤을 새워가며 섰던 당직들이 너무 귀중한 재산이 되었지만, 다시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모두가 기피하는 '바이탈과'에서 이렇게 '가치'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들이 이제 6개월 정도 남았다. 아직도 당직이 무탈했으면 좋겠고 밤에 잠을 더 많이 잤으면 좋겠다. 하지만 '전공의여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얼마 채 남지 않았다. 남은 당직들을 기꺼이 맞이한다고 마무리해야 올바른 전개이겠으나, 양심상 아직 수면시간을 앗아가는 당직을 환영할 수는 없다. 많이 배우고, 많이 무탈한 당직이란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