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로, 사망자들의 또래로서 본 이태원 참사

by 글쓰는 외과의사

10월 달은 퐁당퐁당 근무였다.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스케줄을 퐁당퐁당이라 한다. 서류상 24시간이지만 근무 전 준비 시간과 퇴근 전 회진 시간을 합치면 26시간 일하고, 22시간 쉬는 스케줄이었다. 그래도 퐁당퐁당 근무는 아침에 퇴근할 수 있다. 퇴근 후 평일 오전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생각보다 큰 해방감을 준다. 모두가 일하는 시간에 한적한 카페를 가거나, 운동을 하면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 게다가 한 달의 절반인 15일 동안 마음만 먹으면 저녁 약속을 잡을 수 있다. 퇴근이 늦었던 주 6일 출근 파트의 스케줄과 비교하면 저녁 약속 부담이 없다. 단, 다음날 26시간 당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짧고 굵게 놀아야한다.

10월 29일 토요일은 당직이었다. 10월 30일이 생일이었던 까닭에 뭔가 당직 전, 생일맞이 콧바람을 쐬고 싶었다. 아무리 혼자인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생일인데.’라는 클리셰한 의미부여를 매년 해왔다. 그리고 생일과 할로윈 기간이 겹쳐 어떤 해에는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생일파티를 한 적도 있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부산 겟올라잇을 방문했다가 재즈에 빠진 덕에 이태원 근처 재즈바를 예약했다.

10월 28일 금요일, 친구들과 이태원 재즈바에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즐겼다. ‘귀가 즐겁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었다. 술과 함께 색소폰, 클라리넷 소리에 취했다. 공연자들과 관객들이 다 같이 재즈를 즐겼고, 행복한 추억을 잔뜩 가진 채 귀가했다. 귀가 시에 기억은 드문드문이었지만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고, 숙취와 함께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다.

10월 29일 토요일 당직은 한적했다. 오래간만에 중환자실에는 비어있는 베드가 많았다. 업무를 빨리 끝내고 밤 10시 일찍 누웠다. 잘 수 있을 때 자 둬야 했다. 새벽에 언제 또 병동에서 안 좋은 환자가 내려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새벽에 병원 콜폰이 아닌 개인폰이 계속해서 울렸다. 이상하리만큼 많이 울린 개인폰을 확인하고 수차례 와있는 전화에 깜짝 놀랐다. 12시가 넘어오는 생일 축하 전화라고 하기엔 부재중이 너무나 많았다. 남겨진 카톡들은 축하 카톡과 무사한지를 묻는 카톡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제야 뉴스를 확인하고 이태원 참사를 확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계된 사상자는 50명이었다.

생일 당일에, 바로 전날 이태원을 다녀왔던 기억에 소름이 끼쳤다. 만약 오늘이 당직 아니었더라면 분명 오늘 이태원 재즈바를 갔었을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스테이션에 나와 뉴스와 무분별한 사고 영상들만 보고 있었다. 본원 응급실은 그래도 이태원과 거리가 있어 직접적인 사고 당사자는 오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 병원은 압사로 인해 복강 내와 흉강 내 출혈이 생기는 혈복강, 혈흉강 환자들이 왔다고 했다. 본원은 사고 후 PTSD 환자들이 내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사고 현장에 있던 의사 친구들도 있었다. 당직이 아닌 날 놀러 갔다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온 것이었다. 열명이 넘는 사람들의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단체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현장에 트라우마가 되었고,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번 더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한다. 새벽에 엉엉 울면서 한참을 걸어 집에 갔다는 친구에게 그래도 수고했다는 말밖에 더 위로해줄 수 없었다.

10월 30일은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누군가의 세상이 끝나는 날에, 세상에 태어났음을 축하받는 날인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축하와 안부 연락의 마지막은 모두 '안전하자, 건강하자.'로 끝났다. 사실 축하도 필요 없었다. 단지 친구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모두에게 충격이었을 사고임에도 연락을 주는 친구들이 고마웠고, 그 친구들이 무사해서 한번 더 고마웠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가슴속에서부터 깊은 반성이 올라왔다. 나와 내 친구들이 사고 당사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동안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사고에 대해 생각 한번 해보지 않았다. 오직 재미와 스트레스 해소만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생기겠어란 안일한 마음에 나와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망각했다. 더불어 직업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가슴에 새기었다. 의학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적어도 응급 시에 어떻게 해야 사람을 살릴 수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전공의가 끝난 후에 미용을 할지, 대학에 남아야 할지. 몇 개월 동안 헤맸던 진로 고민이 무색할 만큼 확고해졌다. 꾸준히 공부하고 봉사하는, 나와 내 주변 사람을 지키고, 이런 재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가 진로 고민의 마침표였다.

올해 생일은 누구보다 행복한 추억과, 평생 느껴보지 못했을 반성을 함께 느낀 날이었다. 앞으로 한동안 이태원 쪽은 쳐다보지도 못할 것 같다. 150명의 또래 친구들이 생각나 예전처럼 웃으며 맥주 한 잔 하기가 어려울 것만 같다. 아마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사고 하루 전 이태원의 하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