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날은 공휴일이다. 하지만 당직이다. 휴일에 당직서는 것에 대해 별다른 아쉬움이 없어진 지는 오래다. 이번 달은 이틀에 한번 중환자실 당직을 선다. 아침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다 보니 환자들 얼굴은 매일 보게 된다.
7번 베드에 있는 비뇨기과 할아버지는 벌써 일주일째 중환자실에 계신다. 보통 외과계 중환자실은 수술 후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다음날이나 다다음 날 병동으로 올라간다. 물론 수술과 상관없이 다른 원인으로 중환자실에 오래 계시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수술도 잘 끝나셨고 예정대로라면 다음날 병동으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병동으로 올라가는 날 숨을 쉬기 힘들어하시면서 이동 가능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담배를 오래 태우신 덕에 안 좋았던 호흡기계가 원인이었다. 시끄러운 산소 공급 기계 옆에서 하루 이틀 중환자실 재원기간이 더 길어졌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정정하시다. 가끔 소리도 지르시고, 왕년에 본인이 무슨 일을 했는지 무용담을 말씀해주시기도 한다. 현재는 마을에서 노인 회장을 맡고 계신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보호자인 할머니가 면회 시간에 회장직을 넘겨줄지 물어보았으나, 넘겨줄 수 없다고 퇴원 의지가 강력하시다. 이렇게 정신이 말짱할 때도 있으시지만 대개는 약에 취해 잠들어 있으시다. 1주일 정도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조금씩 정도 들었다. 할아버지 침대 옆 모니터와 소변 주머니로 자꾸 눈길이 간다. 같은 남자니까 소변줄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지 않냐며 빼 달라고 하시는데 빼 드릴 순 없다. 그리고 소변줄을 삽입당해본 적은 없어서 그 고통을 공감해 줄 순 없었다.
오늘은 정신이 말짱하셨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대통령이 누가 됐어?"라고 물으셨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이내 오늘이 투표 날인걸 깨달았다. 아직 투표 중이고 결과 나오려면 한나절은 더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셔도 투표 결과는 많이 궁금하셨나 보다.
2번 침대의 할머니도 장기 재원 할머니이시다. 중환자실에 계신지 벌써 40일이 넘어간다. 할머니는 기관지 절개를 한 후 기계 호흡 중이셔서 말씀을 못하신다. 할머니 방은 격리 공간이어서 방에 TV도 있다. 오늘은 선거 방송이 한참이었다. 할머니 채널 또한 선거 방송에 고정이었다. 투표율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많이 궁금하신가 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대선에 대한 관심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몸은 편찮으셔도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셨고, 투표도 하고 싶어 하셨다. 2번, 7번 환자분들 이외에도 병원엔 투표를 하러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분들이 많으시다. 평소 낮은 투표율에 대해 혀를 차기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만으로 투표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각자는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함부로 단정 짓고 비난하는 일은 지양해야 함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입원 환자들의 투표권도 보장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