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한테는 비밀로 해야 할 실수.

환자가 많을 때 생기는 일들

by 글쓰는 외과의사

주치의의 업무 강도는 대개 담당 환자 수에 정비례하고, 환자 중증도와는 그 제곱에 비례한다.


이번 이식 파트는 환자 수도 많았지만, 환자들의 중증도도 높았다. 덕분에 제시간에 퇴근하기 위해선 출근부터 퇴근까지 빠듯하게 일을 해야 했다. 장기재원 환자들도 대부분이었지만, 단기 입원 환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많이 퇴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입원하는 환자들도 많았다. 담당 환자수는 3주째 변함없이 30명 전후를 유지 중이다.


이렇게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다 보면 웃픈 에피소드들도 저절로 생겨난다.


담당 환자 중 6인실에 40대 아주머니 A 분이 계셨다. 간이식 후 거부반응으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는 분이었다. 간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퇴원이 자꾸만 늦어졌다. 길어지는 입원 기간에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회진 때는 항상 웃는 얼굴이셨다. 입원 10일째, 조금씩 간수치가 떨어지고 2-3일 뒤 퇴원 플랜을 세웠다. 그 소식을 전해주러 병실에 갔더니 A 환자분은 모자를 쓰고 가만히 있었다. 보호자도 옆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안 심심하세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A 환자분은 갑자기 입원한 거라 충전기가 없어 핸드폰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당직 때마다 챙기던 충전기가 있어 가져다 드렸다. "이거 쓰시고 퇴원하실 때 돌려주세요." 라며 2-3일 뒤 퇴원이라는 얘기는 까맣게 잊고 나왔다.


그날 오후, 다른 환자를 보러 2인실에 갔다. 2-3일 뒤 퇴원예정이던 A 환자분이 여기 또 계셨다. 이번에는 모자를 안 쓰고 계셨다. 알고 보니 아까 충전기를 빌려드린 환자분은 A 환자분이 아니었다. 원래 A 환자가 있던 6인실 자리에 새로운 환자가 입원한 것이었다. 그리고 진짜 A 환자분은 2인실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모자를 쓰고 계셨고, 비슷한 나이대의 같은 성별의 환자라 당연히 A 환자분이라 생각했었다.


충전기만 드리고 퇴원 얘기를 까먹은 게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이제 막 입원한 사람한테 이틀 뒤에 퇴원하라고 할 뻔했었다.


빌려준 충전기는 10일째 못 돌려받고 있다. 2인실로 옮겼던 진짜 내 환자는 계획대로 이틀 뒤 퇴원했지만, 충전기를 빌려드렸던 환자는 아직까지 입원 중이다. 다시 돌려달란 말은 못 하고 애꿎은 타 주치의한테 그 환자분은 언제 퇴원하냐고 매일 물어보는 중이다. 퇴원할 때 까먹지만 않고 돌려주시면 다행이다.


이렇게 환자 얼굴을 헷갈려하는 것에 대해 나름의 변명은 있다. 외래와 응급실에서 갑자기 입원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술을 위해 예정된 입원은 오기 전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입원하는 환자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얼굴과 이름이 매치가 되기까지 하루, 이틀은 걸린다. 가끔은 간호사 선생님들의 노티에 "제 환자 아니에요"라고 당당히 얘기한다. 그리고 다시 내 환자 명단을 보면 어느새 HOD 1일 이 떠있다. (HOD는 hospital day로 입원한 날부터 1일로 시작된다.)


언제쯤이면 이 주치의 업무에 익숙해질지, 1년 반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어렵고, 해프닝이 많은 주치의의 나날들이다.


주말에 업로드를 까먹고 출근한 월요일, 쪽지와 함께 충전기가 돌아왔다.
정신없이 일하다 생긴 실수가 환자한테는 병원에서의 첫 위안이었나 보다. 얼굴을 착각했던 실수는 그래도 환자한테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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