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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박 Jyeoni Park Aug 30. 2024

순수한 듯 아닌 듯

베트남 하장 호스텔 안 아주머니



베트남 최북단 도시 하장을 가게 된 것은 하노이에서 묵었던 호스텔 직원덕이었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사파에 간다고 하니 거긴 지금 볼 게 없다며 하장을 추천했다. 호스텔 입구 벽에 걸린 높은 산 사진 딸랑 하나. 나는 그것 말고는 처음엔 하장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노이에 눌어붙은 지 4일째, 왜 아직도 여기에 있냐는 호스텔 직원의 재촉에 하장가는 버스에 올랐다. 두 명은 족히 잘 수 있는 널찍한 슬리핑 좌석에서 맑은 날씨를 구경하던 참이었다. 얼굴은 붉으락하고 이는 거뭇거뭇한 한 아저씨가 커튼사이로 얼굴을 불쑥 내밀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댔다. 처음엔 낯선 동양인 여자애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인 줄 알았는데 그냥 괴롭히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바로 위층에 앉아서 내 자리 커튼을 열어대고 기분 나쁘게 웃어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탑'을 외쳤지만 맥없는 반항이었다. 나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틀어박혀 떨다가 휴게시간에 운전기사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기사는 못 알아듣곤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결국 난 제대로 앉기도 어려운 맨 뒤 2층으로 피신을 갔다. 혹여 아저씨가 따라오진 않을까 불안함 속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길은 점점 구불거렸고 내 속도 함께 뒤흔들렸다.


날이 저물었을 때야 하장에 이르렀다. 버스는 나를 어느 동네 광장에 내려주고 홀연히 떠났다. 하노이 도시의 북적임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개 짖는 소리만 몇 번 동네를 울렸다. 숙소가 이 근처라며 내려준 것인데 길을 따라갈수록 어둠이 나를 에워쌌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논밭 한가운데를 지날 땐 하장의 개구리들이 나를 열렬히 환호하는 듯 울어댔다. 길 끝자락에 있는 안스 하우스(An's House)에는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짚이 얹어진 목재 대문을 들어서니 안 아주머니는 동네 분들과 한참 이야기 중이었다. 아주머니의 갈색 커트머리와 얄브스름 한 생김새가 꼭 우리 엄마를 보는 듯해서 긴장감이 좀 사그라들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위층으로 안내했다. 다락방으로 가는 듯한 계단을 오르니 박물관에서 볼법한 화로가 놓여있었다. 이를 지나쳐 들어가니 입원실처럼 각 침대마다 커튼이 둘러져 있었다. 인기척이 없는 걸 보아 오늘의 투숙객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내일은 뭐 할 거니?"


내가 짐을 내려놓는 사이 아주머니가 물었다.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정말이었다. 내일부터 동네로 나가 *하장루프 투어를 좀 알아볼 생각이었다. 아주머니는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하장은 자신의 손바닥 안이라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나 나는 당장 음식이 필요했다. 멀미와 긴장이 가시니 허기가 밀려왔다. 그렇다고 어두운 논밭길을 다시 나갈 수도 없으니 아주머니에게 먹을 것 좀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반쯩을 내왔다. 이게 뭐냐는 질문에 아주머니는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반쯩은 마치 우리의 송편과도 같았다. 콩가루가 들어있는 쑥떡을 나는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배가 부를 즈음에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하장 루프에 대한 지도를 가져왔다.


'프라이버시', '호스텔', '푸드'….


완벽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간단히 말해서 '모든 게 투어에 포함되어 있으니 너는 돈만 내면 돼'였다. 그래서 가격은 2박 3일에 36만 원이었다. 단체 투어로 10만 원 언저리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가격을 듣고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남매가 과자를 잔뜩 먹고 마녀에게 붙잡히듯, 빼도 박도 못하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가격이 좀 부담된다는 나의 말에 아주머니는 다 이해한다며 순수한 표정을 지었다.


"오케이!"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덥석 아주머니의 미끼를 물었다. 내일 당장 이 고립된 지역에서 투어사를 찾는 것도 깜깜하고, 정보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주는 막막함이 나를 절벽으로 내몬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가이드가 너를 데리러 올 거야. 2박 3일 동안 그가 모든 걸 케어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말에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음날 어리바리한 동갑내기 친구가 날 데리러 올 줄이야.


*하장루프: 하장의 산지, 협곡, 강 등의 자연환경과 소수민족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투어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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