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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Sep 23.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8화 (2)

8화. 정신의학과 진료 (2)

  은혜의 한 달 병가가 3주째 접어들었다. 교육과정 부장 선영을 주축으로 정보 부장 현정, 3학년 부장 영심, 환경 부장 은숙, 진로 부장 미희는 학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선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장 선생님, 학생과 학부모도 중요하지만, 교사에 대한 보호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은혜 선생님의 수업권도 지켜주셔야 하고요. 정은혜 선생님 한 달 병가가 끝나는 6월 초부터는 수업 복귀를 허락해 주시기를 요청드리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물론 학교장이 직원인 교사도 생각하지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우선순위가 피해 학생과 학부모입니다. 교사가 다치지 않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수업 복귀는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눈치가 빤한 교장은 교사들의 자신에 대한 불신을 생각해서 최대한 부드럽게 응수했다. 


  “교사가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교육활동을 하다 벌어진 일입니다. 적극적 교육활동으로 인해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는 것에 대해 많은 교사들이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욕적으로 지도하는 교사들의 사기가 저하된 것도 사실이고요. 아동학대 신고의 위험성을 떠안은 채 이제 선생님들이 어떤 지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일부 목소리 큰 학부모의 말에만 무게를 두지 마시고, 학교 차원에서 마땅히 교사를 보호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보 부장 현정의 말을 3학년 부장 영심이 이어받았다.

  “맞습니다. 저희 학교처럼 민원이 심한 학교에서 지금까지 선생님들이 툭하면 들어오는 별의별 민원에 시달리면서도 교사라는 이유로 참아냈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대해 이렇게 아동학대 신고에 수업 배제까지 당한다면, 교육활동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 피해는 모든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점도 생각해 주세요.”

  “그런 점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럽습니다.” 

  교사의 수업권 보장과 교사 보호를 부탁하는 부장들의 요청이 한 마디씩 이어졌고, 상황을 지켜보자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학교장의 똑같은 답변이 몇 차례 오간 채 면담이 끝났다. 학교장은 의자에서 일어서려는 부장들에게 말했다. 

  “학교장으로서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저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더 읍소해 보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른 선생님들이 동요되지 않도록 부장님들이 중간에서 역할을 잘해 주세요.” 

  교장의 말이 교사들의 불만이 잠재우기 위해 내뱉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영이 은혜에게 교장실을 찾아갔다는 얘기를 전해 준 다음 날, 교장은 바로 은혜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선생님의 수업 복귀를 원치 않는 학부모가 아직 있어요.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 되었는데, 성급하게 선생님을 복귀시켰다가 2차 피해 얘기가 나올까 봐 걱정됩니다. 선생님이 수업 복귀는 교장의 재량권인 거 아시죠? 학교장인 나의 판단은 아직 복귀는 안 됩니다. 병가 연장을 하세요.”

  은혜가 수업 복귀에 대한 강한 뜻을 계속 내비치자 교장은 마지못해 말했다.

  “정 그렇다면, 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에서 논의한 후 결정해서 연락하지요.”

  “학부모회나 운영위원회 말고, 진술서를 쓴 해당 학생의 학부모들과 의견을 나누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분들은 학부모의 대표성을 띤 분들입니다. 그리고, 반 대표 중에는 해당 학생의 학부모도 있고요.”

  교장은 9반 대표 최민경 씨 한 명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미 학부모들과의 논의의 결과는 뻔했다. 3학년 대표 양미영 씨와 1학년 9반 대표 최민경 씨가 좌지우지할 터이니 은혜는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두세 달을 기다려야 했던 K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예약 취소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친절한 병원이어서 세 달 넘게 대기할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집에서 병원까지의 거리가 좀 멀긴 했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안내데스크 직원이 처음 방문인지 물었다. 네,라는 은혜의 대답에 직원은 두꺼운 검사지를 건네며, 먼저 작성하라고 했다. 지난번 검사와 비슷한 수백 개의 질문들에 현기증이 몰려왔다. 현재 상태와 습관, 감정을 체크하고, 상처나 마음 상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답을 했다. 


  예약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한참을 더 기다려서야 겨우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의사는 둥글둥글한 인상에 눈매가 선해 보였다. 은혜가 인사하며 자리에 앉자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첫 진료 보는 분은 상담 시간을 조금 길게 잡기 위해 처방 환자를 먼저 받다 보니 대기 시간이 많이 길어지셨어요. 죄송해요.”     

  만나자마자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태도에서 솔직함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H 정신의학과의 할머니 의사와는 처음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은혜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면서 의사는 컴퓨터 자판을 연신 두드리며 내용을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종종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어휴, 힘드셨겠네요.”라며 공감을 표현했다.


  “그 학교에서 너무 힘들었겠네요. 선생님을 거기에서 쏙 빼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네요.”

  “쏙 빼오고 싶다”는 의사의 말이 한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은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위로를 받았다. 대기 환자가 많아서 긴 시간 상담을 받지 못했지만,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의사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은혜의 상태를 꼼꼼하게 묻고 나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약 먹는 것을 극도로 꺼렸었지만, 은혜는 약을 먹어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단골 분식집에 들러 김밥 한 줄로 저녁을 때웠다. 은혜는 입 안 가득 물을 넣은 후 봉투에 든 세 개의 알약을 하나씩 꺼내 조심스럽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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