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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08.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9화 (1)

9화. 위로의 음식 (1)

  불안 장애 속에서 은혜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동안 찬란한 봄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싱그러운 봄기운이 대지에 싹 틔울 무렵에 난데없이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고 수업에서 배제되었다. 경찰 수사를 대비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상황을 파악하며 준비하는 일보다 은혜를 더 지치고 힘들게 한 존재는 학교장이었다. 학교장은 직원인 은혜를 보호하기는커녕 입김이 센 학부모의 눈치만 보며, 은혜의 수업 복귀를 번번이 거절하고 병가까지 강요했다. 한 달 병가가 끝나는 6월 초가 되기도 전부터 학교장은 수시로 전화하여 수업 복귀는 절대 안 된다고 완강하게 말하며 병가 연장을 요구했다. 결국 은혜는 3주간 병가를 연장하기로 했다.      


  봄에 찾아온 일상의 균열은 은혜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렸고, 봄이 끝났지만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처럼 계속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은혜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힘겹게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가로막은 채 이래도 버틸 수 있겠냐고 은혜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앞에 닥친 고개를 버겁게 넘느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장미꽃에도 은혜의 눈길은 닿지 못했다. 

  꽃내음 가득한 봄의 고운 향기를 느끼지도 못한 채 세상의 아름다움과 동떨어진 깜깜한 터널 속을 걸어야만 했다. 은혜에게 이번 봄은 절망적 상황에서 거듭된 좌절로 상처만 덧나는 잔인한 날들이었다. 가슴 통증과 우울장애 또한 심해졌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그런 은혜를 불러내어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은혜가 속한 셀 리더 김미연 집사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선생님, 오늘 철야 예배 오시죠? 예배 전 8시쯤에 교회 카페에서 잠깐 봐요.”

  은혜가 속한 3 구역 담당 신 목사님을 통해 은혜의 상황을 알게 된 미연은 매일 힘이 되는 성경 구절을 보내주며, 자주 연락을 해 왔다. 

  “밥이 안 들어가면, 다른 거라도 꼭 챙겨 먹어요. 선생님이 꼭 내 동생 같은 마음이 들어요.”

  미연은 직접 만들었다며 호두 파이를 넣은 상자를 은혜에게 내밀었다. 

  “지난번에 주신 떡과 식혜도 잘 먹었는데, 이렇게 번번이 너무 감사해요.”

  “곧 신현수 목사님이 오실 거예요. 내가 오셔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30대 중반의 신현수 목사는 아주 열정적이었고 성도들을 세심하게 잘 챙겼다. 가끔씩 은혜에게 전화로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으며 뜨겁게 기도해 주었다. 단정한 포머드 머리에 흰 셔츠를 깔끔하게 입은 신 목사가 교회 카페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성도님,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신 목사에게 은혜는 짧게 지난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신 목사는 은혜의 머리에 손을 얹고 큰 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은혜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의 기도에 힘입어 어둠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고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몇 주 전, 스승의 날에는 향진중에서 같이 근무하는 후배 교사 최경훈이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부장님, 스승의 날이네요. 

  부장님 아이들 가르치시느라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부장님의 제자는 아니어도, 이번 스승의 날에 부장님께 꼭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2년 동안 수업친구 전학공 때마다 부장님께 참 많이 배웠습니다. 그 경력에도 끊임없이 좋은 수업을 위해 연구하고, 동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모습을 보며, 부장님처럼 열정적인 선생님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장님, 감사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인기 많은 신메뉴 치킨입니다.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한 번 드셔 보세요.

  식사 거르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은혜는 스승의 날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사비로 초콜릿이나 간식을 사 주면서도,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작은 선물조차 받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청렴 연수에서 김영란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나 공직자의 윤리를 준수해 달라는 공직자 이메일을 볼 때마다 은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이들이 으레 부르는 스승의 은혜 노래를 듣는 것도 거북하기만 했다. 스승의 날에 차라리 학교를 하루 쉬게 해 주는 것이 진정 교사를 위한 스승의 날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군다나 올해 스승의 날은 더욱 착잡하기만 했다. 그런 은혜의 마음을 헤아리고 연락한 경훈의 사려 깊은 마음이 고맙고 한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경훈은 기간제를 오래 하다가 서른이 넘어서 임용에 합격하여 2년 전에 향진중에 발령받았다. 은혜가 리더인 수업친구 전문적학습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경훈이 먼저 해 오면서 친밀해졌다. 경훈은 학폭 업무를 맡아서 사안이 터질 때마다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었지만 모임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수업 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경훈은 학폭 담당자로서 겪는 스트레스와 애로사항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하곤 했다.      

  “사실 지난번 학폭 건은 양쪽 학부모들이 서로 쌍방으로 학폭을 걸고 서로 피해자라고 우기면서 제 말 한마디에도 꼬투리를 잡아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어요. 밤낮없이 전화하고 폭언하고, 한 달 동안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잤던 것 같아요. 근데 뭐, 어쩔 수 없지요. 제가 맡은 일이니 힘들어도 참으면서 하는 수밖에요.”


  모임에서 경훈을 볼 때마다 신규답지 않은 진중함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스럽고 짠하기도 했다. 은혜는 생각지도 못한 경훈의 응원과 치킨 선물에 가슴이 울컥했다. 끊임없이 터지는 학폭 사건에 힘들고 정신이 바쁠 텐데, 선배까지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두고두고 고마웠다. 그날 저녁에 은혜는 경훈이 보낸 쿠폰 덕에 오랜만에 치킨을 먹었다. 입맛이 없어 하루 종일 쿠키 몇 조각 먹은 게 다였는데, 독특한 가루가 뿌려진 치킨을 소스에 찍어 한 입 먹으니 입맛이 조금은 돋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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