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향 Oct 08.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9화 (2)

9화. 위로의 음식 (2)

  김민경은 은혜가 예전에 근무한 학교에서 알게 되어 학교를 옮기고도 십 년 가까이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민경은 은혜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둘은 친구처럼 지냈다. 둘 다 싱글이라 주말에 가끔 서울에서 만나 고궁이나 미술관을 가기도 했다. 민경은 은혜가 힘든 일을 겪고부터 전보다 더 자주 연락을 했다.  

  “은혜 샘, 토요일에 같이 저녁 먹어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같은 경기도이지만 민경이 사는 곳에서 은혜가 사는 도시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렸다. 은혜는 민경의 도착시간에 맞추어 지하철 역으로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갔다. 비상등을 깜빡이며 기다리는 은혜의 차를 발견하고, 민경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샘, 너무 살이 빠진 거 아니에요?”

  민경이 차에 올라 은혜의 핼쑥한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뭐 먹고 싶어요?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요.”

  은혜는 집 근처에 순두부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커다란 홀에 테이블이 거의 꽉 차 있었다. 종업원이 내려놓고 간 밑반찬을 보며 민경이 말했다.

  “반찬이 엄청 깔끔하게 나오는데요. 왠지 여기 맛집 같아요.” 

  “네, 다 맛있어요. 요즘 소화가 잘 안 되는데, 여기 순두부는 속이 편해서 좋더라고요.”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민경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샘, 탄원서예요. 은영 샘이랑 의현 샘 것도 있어요. 오늘 샘 같이 만나고 싶은데, 다른 일 때문에 못 와서 미안하다며 따로 연락하신대요.” 

  “고마워요. 나 때문에 별 걸 다 써 보죠?”

  “아니에요.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암튼 수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탄원서 더 필요하면, 같이 근무한 다른 샘들한테 더 연락해 줄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지금 학교 샘들도 많이 써 주고, 예전에 다른 학교에서 근무했었던 샘들도 써 줘서요.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민경을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은혜는 십오 년 간 학교에서 만나고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같이 근무하면서 아주 친밀하다고 느꼈지만 학교를 옮기면서 바로 연락이 끊어진 사람도 있고, 처음엔 딱히 친하지 않았었는데 의외로 잘 통해서 친구로 지내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서로 생각해 주고 만남을 이어나갈 수 있는 옛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선영에게서 주일 예배 후에 같이 점심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은혜가 병가를 내고 연락은 자주 했지만, 얼굴을 자주 볼 수는 없었다. 같은 교회에 다녀도 선영은 예배 후 다른 모임이 있어 따로 만나지 못했다. 교회 앞에서 기다리는 은혜를 발견하고, 선영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어이구,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됐네. 밥을 아예 안 먹고 산 것 같아...”

  “먹는 것도 다 귀찮고, 요즘은 아무것도 의욕이 없어요.”

  “그럼 안 되지. 이러다 몸 상하겠어. 일단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선영은 교회 근처 생선구이 집으로 은혜를 데리고 갔다.    

 

  “정 부장, 힘든 거 알지만, 무엇보다 잘 먹고 건강 챙겨야 해요.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경찰 조사받을 거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 쉬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요. 잠이라도 자고 싶은데 온갖 생각과 불안감 때문에 잠도 잘 안 와요.”

  “정신의학과 상담은 계속 받고 있어요? 약도 잘 챙겨 먹지.”

  “상담받고 약을 먹긴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의사가 검사 결과지를 보더니 우울삽화가 심하고 불안 장애가 좀 크대요. 큰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게 고통스러워요.”

  선영은 은혜가 천천히 식사를 마칠 때까지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를 마시면서 기다려 주었다. 편한 사람이랑 밥을 먹어서인지 은혜는 모처럼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식당을 나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영은 은혜의 손을 붙잡고 기도를 해 주었다. 은혜는 그날 밤에는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은혜 곁에는 은혜가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며 따뜻한 밥 한 끼로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계속 있었다. 어떤 날에는 같이 성경 공부하는 모임의 여집사님들이 집에 초대해 맛있는 집밥을 대접해 주기도 했다. 가끔은 향진중 부장 언니들이 찾아와 저녁을 사 주며 학교의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주기도 했다.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구하는 중보 기도와 그들과 함께한 따뜻한 식사에 담긴 진심에 힘입어 은혜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이전 17화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9화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