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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22.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0화 (2)

10화. 경찰 조사 (2)

  오전과 마찬가지로 사실 확인서 내용에 대한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을 하며 조사가 이어졌다. 모든 조사를 마친 후 수사관이 작성한 조서 내용을 프린트했다.

  “진술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 보시고, 모든 페이지에 지장을 찍으세요.”

  은혜는 권 변호사와 함께 스무 페이지가 넘는 조사 내용을 빠르게 읽었다. 각 장마다 손도장을 찍고 나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뉴스에서 재벌 회장이나 정치인들이 검찰이나 경찰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체감이 되었다.      


  권 변호사가 부른 콜벤이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렸다가 배웅하고, 은혜는 차에 올랐다. 조사관에게 대답한 말을 복기할수록 후회되는 점이 생각나 자책이 되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은혜는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생각했다. 스스로를 탓하지 말자고. 나까지 나를 탓하면 더 이상은 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은혜는 교회로 차를 몰았다. 은혜가 다니는 교회는 언제나 문이 열려 있었다. 예배실에는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은혜는 모든 일은 하나님 손에 달렸으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은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선영이 은혜를 집으로 초대했다. 경찰 조사받느라고 고생했다며 은혜에게 몸보신을 시켜주겠노라고 했다. 은혜는 집 근처 빵집에서 당근 카스텔라와 유자 파운드케이크, 앙버터 바게트를 사서 선영의 집으로 향했다. 선영의 집에는 이미 환경 부장 은숙과 정보 부장 현정, 3학년 부장 영심도 와 있었다. 

  “그냥 오라니까. 뭐 하러 이런 걸 사 와.”

  은혜가 내미는 빵 봉지를 받아 들며 선영이 말했다.

  “자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우리도 왔어.”

  은숙이 은혜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늘 홍 부장님이 닭백숙으로 몸보신시켜 준다고 해서 오신 거 아니고요? 하하!”

  은숙의 인사를 맞받아 영심이 농을 걸었다. 상황에 상관없이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여유 있는 부장들의 태도에 은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게 연륜인가 보다 싶었다.      


  선영의 빠른 손놀림에 식탁이 점점 채워졌다. 부장들은 물을 따르고, 반찬을 세팅하고 손발이 착착 맞아 바지런하게 움직였다. 구수한 닭백숙에 잘 익은 김치와 오이무침, 싱싱한 풋고추까지 건강한 밥상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모두들 환호하며 한 그릇씩 뚝딱 먹었다.

  다들 배부르다고 하면서도 선영이 후식으로 내 온 수박과 참외를 집어 먹으며 끊임없이 담소를 나누었다. 현정이 은혜에게 수박을 더 먹으라고 건네며 물었다. 

  “경찰 조사받고 왔다며. 괜찮았어요?”

  “흠... 언니들, 경찰 조사 한 번도 안 받아 본 사람은 앞으로 내 앞에서 인생이 힘들다는 말은 꺼내지도 마세요. 살면서 경찰 조사 정도는 받아봐야 내 앞에서 힘들다는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어요. 흐흐흐...”

  이런 농담을 하다니, 은혜 스스로도 말을 내뱉으면서 한편으로 놀랐다. 

  “난 아직 암 완치 판정 못 받았으니까 힘들다고 해도 되지? 그나저나 정 부장, 드라마 보면, 육개장 같은 거 시켜주던데, 정 부장은 경찰에서 뭐 시켜줬어요?”

  은숙이 은혜의 농담을 이어받았다. 

  “시켜주긴요. 드라마 다 뻥이에요. 변호사랑 둘이 나가서 사 먹었어요.”

  “이렇게 또 팩트 체크를 하네. 아, 그렇구나. 하하하...”

  얼마 만에 웃어보는지, 은혜는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람들과 있으니 힘든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고 웃을 수 있었다.


  “정 부장, 지난주에 권민호 선생님도 아동학대 신고당한 거 모르지?”

  영심의 말에 은혜는 화들짝 놀라 물었다. 

  “1학년 10반 담임 권민호 선생님이요? 왜요? 누가요?”

  “민호 샘이 수업하다가 아이들이 떠들고 계속 장난쳐서 좀 혼냈나 봐. 그걸 가지고 또 어떤 학부모가 민원을 넣고, 신고까지 했어.”

  “그럼, 민호 샘도 교장이 수업 배제했어요?”

  “수업 배제는 딱 이틀만 했어요. 중국어 교과가 둘 뿐이니 보강을 할 사람도 없고, 바로 학기말 시험 기간이기도 했고. 이제 다음 주면 방학이니까.”

  “무엇보다 민호 샘이 엄청 반발했어요. 강력하게 수업권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교권보호위원회도 열어달라고 하고. 맘카페에서 자기에 대해 아동학대라고 거론한 사람 찾아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까지 하면서 말이야.”

  선영에 이어 현정이 구체적인 상황을 보태어 알려주었다.  

  “민호 샘이 잘 대처했네요...”

  은혜는 시무룩해져 말했다. 권민호처럼 처음부터 강하게 대응했어야 했나 후회도 되었다. 그런 은혜의 마음을 알아채고 은숙이 말했다.

  “정 부장 사례를 보았으니 권민호가 세게 나가야 한다고 판단한 거지. 교장 말대로 가만히 따랐다가 수업 복귀 못하고 당하기만 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교무실에 방현석 부장이 옆에서 코치를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런 쪽으로는 워낙 빠삭한 사람이니깐.”

  “그보다 문제는 학부모들이 이제 학습이 된 것 같아. 조금만 감정이 상하면 신고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거지. 재작년에 양미영 씨가 담임 교체했던 전적도 있고, 이번에 최민경 씨가 정 부장 신고해서 지금까지도 수업 복귀 못하게 막고 있잖아. 그러니 권민호가 애들 조금 나무란 걸 가지고 바로 신고해 버리고 말이야.”

  영심의 말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언제부터 학교가 이렇게 되었을까. 선생님의 당연한 교육적 목적의 지도조차도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신고해 버리는 이런 풍토가 만연한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참담한 마음에 모두 씁쓸하게 입을 다물었다.         


  선영의 집에서 오랜만에 부장과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은혜는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권민호처럼 처음부터 강하게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달라고 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되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수업 배제를 한 교장한테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어리숙하게 교장이 하라는 대로 따라왔던 자신을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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