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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22.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0화 (1)

10화. 경찰 조사 (1)

  6월인데도 한낮에는 제법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내리쬐는 햇살에 연신 땀을 흘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권 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서초동 법률사무소로 향하는 은혜의 얼굴에도 땀이 흘러내렸다. 경찰 수사가 7월 초에 잡혔다며, 권 변호사는 모의 연습을 하러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법률사무소 직원이 상담실로 은혜를 안내하며, 시원한 음료수를 건넸다. 은혜는 권 변호사가 예상 질문지를 어떻게 준비했을지 기대하며, 변호사 선임을 잘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곧이어 상담실 문이 열리고, 권 변호사가 서류철과 노트북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인사했다.

  “더운데 오시느라 너무 수고하셨어요.”

  은혜는 엷은 미소를 띠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권 변호사는 서류철에서 수사개시 통보서를 꺼냈다. 예상 질문지는 없었고, 권 변호사는 즉석에서 질문을 했다. 은혜의 우려대로 아이들의 사실확인서를 토대로 작성된 통보서에는 왜곡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은혜는 경찰에 보내기 위해 작성한 진술서의 내용을 토대로 사실 관계를 바로잡으며 답했다. 모의 연습인데도 긴장이 되었다. 은혜의 답변을 듣고, 권 변호사가 표현적인 부분에서 수정을 해 주는 선에서 모의 연습은 일찍 끝났다.      

     

  경찰 출석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은혜의 가슴 통증과 수면 장애, 불안 장애는 더욱 심해졌다. 불안증이 심각할 때 먹으라고 의사가 특별히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은혜는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찬양을 들었다. 견딜 수 없을 때에는 신현수 목사님께 전화로 기도를 받기도 했다.  

   


  7월, 한여름의 열기는 아침부터 도시를 뜨겁게 달구었다. 은혜는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는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아침 일찍 나섰다. 출석 시간인 10시보다 한 시간 일찍 경찰청에 도착했다.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아 쥐고 권 변호사를 기다렸다. 권 변호사는 10분 전에야 콜밴을 타고 도착했다. 시간이 되자 담당 수사관이 직접 나와서 조사실로 함께 갔다. 코로나 때문에 경찰청이 출입제한 중이라 수사관이 직접 나온다고 했다. 수사관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긴 머리를 집게 핀으로 말아 올려 시원시원한 인상을 주었다.       


  조사실에 앉자 은혜는 불안증세가 몰려왔다. 미리 먹은 약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긴장한 은혜의 얼굴을 보고 수사관은 시원한 물을 챙겨다 주며, 편안하게 얘기하면 된다고 했다. 조사관이 내려놓은 두꺼운 서류철이 꽤 많았다. 은혜는 피해자 진술서라고 쓰여 있는 서류 묶음에 눈길이 갔다. 수사관은 하늘색 네일 아트를 한 손가락으로 천천히 진술서를 넘겼다. 학교의 원본대조필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학교장의 지시로 전수조사도 없이 학급 회장의 목격자 진술에서 언급한 아이들을 담임들이 불러 모아 받은 사실확인서가 맞았다. 피해자라는 인식도 없이 아이들이 모여서 과장해서 쓴 사실확인서가 피해자 진술서로 사건의 중요한 수사 자료가 되어 있었다.      


  수사관은 아이들이 쓴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조서를 써 나갔다. 아이들을 세워 두었다는 것 말고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과 달랐다. 

  “3월 3일 2교시에 1-9반에서 준비물 검사를 해서 없는 아이들을 세워 두었다고 쓰여 있는데, 사실입니까?” 

  조사관이 사실 확인서를 내용을 확인하며, 은혜에게 질문했다.

  “3월 첫째 주에 제가 가르치는 1학년 아이들은 딱 이틀 출석했습니다. 첫 시간에는 오리엔테이션으로 수업에 대한 안내하고, 두 번째 시간에 학습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3월 3일 1-9반은 첫 시간이었는데, 준비물 검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제출한 반별 수업 진도 정리 내용을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은혜는 아이들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 진술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1학년 9반에서 서현수 학생을 180분을 세워두었나요?”

  “중학교는 1시간이 45분 수업입니다. 제 수업은 블록 수업이라 1차시 45분 수업 후 10분 쉬고 2차시가 이어집니다. 준비물이 없어서 세워둔 아이들도 수업에서 배제하지 않기 위해 자기 자리에 세워 두었습니다.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한 마디라도 답하면 바로 앉혔고요. 각 차시 준비물이 달랐는데, 두 시간 내내 서 있었던 아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혹여 있다 해도 180분이라는 시간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모여서 과장하여 작성한 사실확인서를 바탕으로 조사관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은혜가 했다는 욕설도 각양각색이었다. 떠드는 무리를 향해 ‘어떤 새끼’가 그딴 소리를 하냐고 한 마디 내뱉은 것에서 파생된 말은 ‘미친 새끼, 그딴 것도 못하냐, 거지 같다, 아이 씨’ 등으로 왜곡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거짓되고 왜곡된 진술을 했는지 은혜는 잠시 생각했다. 말이라는 것은 누구의 입으로 전해지느냐에 따라 워딩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 특히 아이들은 자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은어나 욕설로 상황을 치환하였기 때문에 진술이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성악설이 뒷받침하듯 영악하고 악랄한 성품의 아이들의 못된 마음이었던 걸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단지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는 철없는 행동이었을까. 10반 담임의 말대로 아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쓰게 했으니 장난기 많고 생각 없는 중1 남자아이들끼리 입을 맞추기로 하고 과장했을 것이다. 그 파장이 누군가의 삶에 미치는 영향 따위야 생각조차 못했을 테고.   

  은혜는 있었던 사실을 세세하게 조사관에게 설명하며, 어떤 내용이 왜곡되고 과장되었는지를 조목조목 답변했다.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다. 수사관은 점심을 먹고 다시 조사를 이어가자고 했다.           


  은혜는 권 변호사와 함께 경찰청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드라마에서 보듯, 수사가 길어지면 경찰이 국밥을 시켜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은혜와 권 변호사는 똑같이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이번에 선생님 사건도 그렇고, 제가 맡고 있는 다른 사건들을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많이 들어요. 최근에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이 점점 강조되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자주 보게 돼거든요.

  권 변호사는 찌개를 한 입 넣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맡고 있는 사건 중에 대기업에서 능력 인정받고 잘 나가는 30대 남자분이 한 명 있어요. 어느 날 동거하던 여자가 뜬금없이 본인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게 했다고, 성폭력 및 강간으로 고소를 했어요.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기자 동거녀가 그런 식으로 고소를 한 건데요. 그 일로 남자분은 회사에서도 아주 곤란한 상황이고 거의 폐인이 되었어요.

  “아...”

  “요즘은 시대적으로 여성이나 아이들이 피해자라고 하면, 지나치게 그쪽 입장만을 중요하게 반영하는 추세라서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선생님 사건에서도 아이들의 진술서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를 선생님이 말했지만, 경찰에서 어떻게 판단할지는 장담할 수 없거든요. 아동학대 사건에서는 아이들의 입장과 진술에 더 무게를 두니까요.”

  밥을 반도 못 먹고 은혜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떨리는 마음은 오전보다는 진정이 조금 되었지만, 두려움과 불안감이 확 몰려왔다.      


  식당에서 나오자 작열하는 태양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은혜는 눈을 뜨기가 힘들어 손차양으로 햇볕을 겨우 가렸다. 은혜의 앞에서 성큼 걷고 있는 권 변호사의 셔츠가 금방 땀으로 젖었다. 둘은 빠른 걸음으로 다시 경찰청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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