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
수원쯤 오면 버스 타기 전에 시간 확인 같은 건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청주 버스” 같은 앱은 지워도 좋을 줄 알았다. 거기서나 여기서나 여전히 실시간으로 버스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달려 나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사무실까지 가는 경로를 찍어봐야 한다, 매번. 버스가 자기 맘대로 오기 때문에...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홀연히 정류장에 당도하는 날은 언제쯤 오려나.
본가에서 대학을 갈 때도 50분씩, 자취방에서 사무실을 갈 때도 50분씩. 고정적으로 갈 곳이 있다 하면 50분은 버스에서 보내야 한다. 아주 반복적으로. 보통은 에어팟을 끼고 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지만, 그것도 지루해질 쯤이면 가만히 창밖을 본다. 어떤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눈을 쉬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꼭 기대치 않은 순간에 얻어지는 선물이 있다. 마음이 초췌하지 않은 날에만 발견되는 일상의 기쁨들. 꼭 운명 같아,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 소리 없는 아름다움은 터질 듯한 노을빛일 때도, 버스 바깥으로 확장되는 생각들일 때도 있다. 고개를 푹 숙인 나는 고단한 아무개이지만, 고개를 빳빳이 든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진귀한 생각들이 남은 하루를 건사하게 내버려둔다.
비일상의 순간은 창밖에서 얻어진다.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그 순간을 무시할 수 없다. 끊임없이 내가 선 위치, 바라볼 곳,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가만히 흘러갔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을지 모른다. 지나가 버린 타이밍, 놓쳐 버린 사람,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을 안팎으로 불러들인다. 통근길에서부터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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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사무실에선 멀리 있는 빌딩만 보인다. 석양이 질 때 조금 예쁘다는 것 말고는 딱히 감흥 없는 뷰다.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공사장의 소음들. 우리 사무실은 수원에서도 악명 높은 인계동에 속한다. 낮에는 배고픈 직장인의 거리지만 밤이 되면 다른 방식으로 목마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직 야근 경험이 많지 않아 다행히 전해서만 들었다. 때로는 아침까지 연장된 밤을 목격할 수도 있다. 어떤 날엔 아침부터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런 직장인과 조폭들 사이를 투명하게 누비는 인부들이 있다. 역시 마음이 초췌하지 않을 때만 눈에 보이는 존재들이다. 어떤 날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를 내며 존재를 확언한다.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나와 시위하는 순간처럼.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가 짬뽕지존 앞에서 시위하는 무리를 보았다. 어느 공사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왜 짬뽕지존 앞에 모여 계신지는 더 알 수 없었다.
오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반복적이고 조악한 노래와 함께, 두고두고 함성을 지르는 날이면 사무실 창문을 조용히 닫는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따금씩 들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아주 큰 소리를 내야만 들리는 목소리를 생각한다. 그분들께는 창밖을 보며 자기 목소리를 들을 시간 따위는 없겠다는 짐작만 하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서 사무실 옆에, 뒤에, 앞의 공사 현장을 슬쩍 엿본다. 우리 건물도 아직 비어 있는데 무슨 건물이 이렇게 많이 필요할까. 창문이 닫힌 사무실에는 희미한 공사장 소음과 타이핑 소리만 남는다. 오늘도 퇴근하는 길이면 사무실 창밖 같은 건 다 잊고 내 목소리를 듣기 바쁠 것이다. 고개를 들고 창밖이라도 보면 다행이다. 언제까지 하나의 목소리만 들으며 살 것인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쟁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