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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Aug 13. 2021

귀가 트이는 한국어

어머님 은혜에 감사

비자발적 반복 학습

 

“선생님, 교포들은 한국어 못해도 잘 알아듣는 말이 있어요.” 

한국어 학원에서 일할 때 재미 교포 학생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혼날 때 들은 한국말로 귀가 트였다고 한. 그건 자신뿐만 아니라 교포 친구들이 다 공감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엄마가 화가 나서 한국말로 소리치면서 하는 한국말이 매번 비슷하고 자주 나오는 ‘주요 표현’이 있었단다. 역시 외국어는 반복 학습이다. 맥락을 아는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뜻을 알기 마련이다. 야단을 치더라도 한국어로 치면 일석이조. 어머니는 모르셨겠지만 어머니 덕분에 그렇게 아들의 한국어가 나날이 늘고 있었다. 물론 야단을 맞고도 정신 못 차리고 같은 잘못을 반복한 본인도 귀가 트이는 데 한몫을 했다.

 교포들은 주위에서 한국어를 들을 기회가 많아서 어휘를 많이 안다. 문제는 그렇게 배운 어휘가 정확성이 떨어지고 표준어가 아닐 때도 많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그룹 god의 멤버 박준형이 ‘오토바이’가 아니라 ‘오도바이’, ‘토마토’가 아니라 ‘도마도’라고 하는 것을 보고 학생들 생각이 나서 웃었다.

 교포 학생들의 이야기에는  어른들한테 배웠겠구나 싶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그래 가지구요, 제가 삐다지에서 그거 찾아봤는데요.”

생의 이야기를 듣는데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응? ‘삐다지’가 뭐지?


삐다지 : ‘서랍’의 방언(경상)     

‘서랍’이 아니라 ‘삐다지’로 알고 있구나. 경상도에서 살았던 나도 모르는 말인데 이런 말을 아는구나. 집에서 자주 들으면서 서랍 대신 삐다지 입력이 되었나 보다. 이런 식으로 교포 학생들의 말을 듣다얼굴도 뵌 적 없는 학생 부모님의 고향도 짐작하게 되고 할머니 손에 자랐나 하는 합리적 의심도 하게 된다.


무한 반복의 힘

 

재미 교포인 낸시는  자기 이름이 싫다고 했다.

“낸시, 음..좀 옛날 이름이고 나는 싫어요.”

“그래요? 부모님이 이름을 지으셨어요?”

“네, 레이건 대통령 부인 이름이니까 부모님이 그거 좋아서, 낸시 됐어요.”

 언니가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언니 이름을 물었더니 언니 이름은 캐시였다. 낸시와 캐시. 역시 한국 부모님이라서 돌림자 포기 못하신 것일까?

 재미 교포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볼 때는 외국인 같지만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면 한국식으로 자란 것이 느껴져서 친근하다. 재미 교포 여학생 중에는 아이라인을 두껍게 그리고 큰 링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낸시도 학원에 올 때 그런 화장과 귀걸이를 즐겨 했는데 엄마가 참 싫어하신다고 했다.

 제일 자주 듣는 말이 얌전하게 하고 다니라는 말. 자랄 때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고 어른들께 인사 잘 하고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 부모님들의 엄격한 교육 덕분인지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이면서도 예의 바른 교포 학생들을 많이 봤다. 그렇게 동서양의 장점을 조화롭게 가진 학생들을 보면 참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 반복되는 부모님의 잔소리와 엄격한 교육은 자녀의 귀를 트이게 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게 자라는 데 도움이 되었나 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는 무슨 소리냐며 반론을 제기한다. 동서양의 단점을 빠짐없이 가진 교포 학생도 많이 봤노라고. 그렇다. 나도 나쁜 예를 안 본 것은 아니다. 그래도 기억에 더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좋은 예였다. 언제나 좋은 예, 나쁜 예는 다 있는 법이지만 좋은 예를 많이 본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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