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과 함께 잘 살아간다.

또 다른 마음 : 불안

by 세미한 소리

나는 불안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집에 혼자 있으면 불안했고, 학교에서 발표할 때, 모르는 사람에게 말해야 할 때에도 불안했다. 다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냥 다 불안했다. 그래도 다행히 불안해하면서 해야 할 일들은 잘했고, 그 경험들이 쌓이면서 점차 덜 불안해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겉으로 보면 전혀 불안이 없는 사람 같다. 180cm와 80kg가 넘는 체격 때문에 그렇고, 내가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목사이기 때문에도 그렇다. 그렇게 겉으로 불안이 없는 사람처럼 살다 보니, 스스로도 불안한 사람이 아니라고 착각했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초가을에 일이 터졌다.


어느 날 어깨와 목이 아파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날부터 어깨와 목은 아프지 않았고, 대신 눈이 침침하고 초점이 잘 안 잡혔다. 그래서 안과에 갔는데, 이번에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더 컸고, 혹시 큰 병에 걸렸는데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며칠 뒤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거봐! 나 큰 병이 걸린 거야!’ 당장 유명한 신경외과를 검색한 다음 진찰을 받았는데, 어라? 또 아무 이상이 없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지금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불안하다는 것을!


잘 숨겨 온 약점을 들킨 것 같아서 창피했고, 불안 하나 극복하지 못하는 부족하고 능력 없는 목사와 신앙인이 된 것 같아서 괴로웠다. 나름 상담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헛짓이 된 것 같아서 허탈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이었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안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읽었고, 이어서 이상심리학 시리즈 <범불안장애>와 심리학 전문가들이 함께 집필한 <불안이라는 자극>도 읽었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두근거리는 증상이 사라졌고, 점차 불안한 사람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평생 불안한 사람으로 살았는데, 고작 책 몇 권 읽었다고 달라졌다니 이상하겠지만, 사실이다. 마치 어렸을 적 불 꺼진 어두운 방에 이상한 물체를 보고 무서워하다가, 불을 켜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고 알게 되면 전혀 무섭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위험 요소는 과대평가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과소평가하면 불안에 빠진다.


불안과 공포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공포에는 귀신, 사고 등 대상이 있고, 그래서 대부분 외부에서 공포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불안에는 대상이 없다. 그리고 그 원인 역시 외부보다는 내부에 있다. 다시 말해서 불안은 밖의 현실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판단과 생각에 의해서 발생한다. 심리학자 에머리와 제임스 캠벨은 이렇게 말한다. “위험 요소는 과대평가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과소평가하면 불안에 빠진다. 불안은 무언가 나쁜 일이 벌어진다는 가정하에 행동할 때 생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거대하게 만들고, 반대로 자기 자신은 쪼그라뜨려서 작게 만들 때 불안하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반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거대해진 모양을 원래대로 수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쪼그라진 자신의 모습을 펴서 원래 크기로 회복할 수 있다면,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독서를 통해서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불안이 현실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평가와 판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후로는, 불안함을 느껴도 그 울렁거리는 감정에 압도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을 경고등처럼 사용했다. ‘아! 지금 내가 무언가를 과대평가하고 있구나. 나를 또 쪼그라뜨렸구나!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최대한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실제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도 불안하기보다는 현실 안에서 실제적인 일을 하려고 했다. 불안해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무언가를 할 때 변동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리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한 없이 초라해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 기도했다. ‘쪼그라든 마음과 생각을 펴주세요. 내가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그러면 조금씩 불안의 울렁거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각자 불안의 모양과 크기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혹시 과대평가된 부분이나 과소평가된 부분이 있지 않나?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 타인에 대한 평가,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과대평가하면서 스스로 불안해하고 압도당한다고 한다. 내 불안 역시 정확히 여기에 해당했다. 여러분은 어떤가? 무엇 때문에 불안하가? 도망치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자. 그러면 막상 별것 아닐 수 있다. 곰 인형처럼 전혀 나를 공격할 수 없는 귀여운 녀석일 수 있다. 그러니 마음의 불을 켜서 잘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자.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책들이 각자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로 뽑는 행동은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언뜻 생각하면 불안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해결이 될까 싶지만, 자신의 왜곡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불안을 만든다는 앞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바로 수긍하게 된다. 불안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어려움이 과대평가되어 있고, 그래서 지금처럼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과소평가되어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일 뿐, 본래 자신에게는 지금 어려움을 극복할 능력이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는 행동은 자신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고, 이를 통해서 불안은 우리가 다루고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약해진다. 마치 깜깜한 어둠 속에서 귀신 행세를 한 곰인형이 환한 빛 속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전히 나는 불안한 사람이고, 작은 일에도 쉽게 쫄아 버린다. 그러나 이제는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가지 않는다. 불안하다는 사실에 놀라거나 실망하지도 않는다. 불안하지만 동시에 해야 할 일을 퍽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믿기 때문이다. 불안이 없는 사람처럼 연기하지도 않는다. 내게 필요한 용기는 불안을 못 느끼는 용기가 아니라 불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서도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불안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한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불안은 한 사람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그와 함께 동반하는 극히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불안에서 도망치지 말고, 스콧 스토셀의 책 제목처럼 불안과 함께 잘 살아야겠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의 불안이 가벼워지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불안이라는 문제가 가볍고 쉽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경우 불안은 억압과 관련되어 있고, 무의식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깊은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만큼 어렵고 깊은 문제이고, 어떤 불안은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전문가를 찾아가길 권한다.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만큼 멋지고 용기 있는 행동도 없으니, 조금만 용기를 내보자. 그러나 만약 불안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면, 아래의 방법으로 자신의 불안을 만나보자. 그리고 불안과 함께 잘 살아보자.





하나. 불안은 자신의 평가와 판단에서 시작한다. 위험 요소는 과대평가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과소평가하면 불안에 빠진다.


둘.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자. 불안은 왜곡하고 숨길 수록 강해지고,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다스릴 수 있을 만큼 약해진다.


셋. 크게 보지도 작게 보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현실과 사실을 보려고 노력하자.


넷. 용감한 사람은 불안을 못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다섯. 불안을 없앨 수는 없다. 경고등처럼 여기며 함께 잘 살아가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