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사람들 일대기 7편
인석은 바다가 싫었다. 파도는 매일 똑같았고, 그 반복이 지겨웠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희망을 안고 떠나온 사람들의 보금자리’라 불렀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긴 단지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자리였다. 어릴 적 그가 살던 집은 피란민촌 골목 가장 안쪽, 일본인들 묘비 위에 대충 터 잡고 세운 슬레이트 지붕 집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하수도 물이 들이치던. 바람이 불면 집 전체가 흔들렸고, 장판 아래로는 늘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배어 있었다.
등교하러 시장을 가로질러 갈 때면, 노상인은 얼굴 아는 아이들에게 고구마 하나씩 쥐어주곤 했다. 그 고구마가 그의 아침이었다. 노상인은 이름을 묻지도, 대꾸를 바라지도 않았다. “갖고 가, 먹어” 하고 말없이 손을 내밀던 그 얼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인석은 그 고마움을 말로는 제대로 전해본 적이 없었다. 대신 쉬는 시간마다 오래된 달력 뒷면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볼이 통통하고 눈꼬리가 길게 처진 노상인의 얼굴, 생선이 널린 좌판, 녹이 슨 손수레. 그것이 인석이 처음으로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얼굴’이었다.
중학생이 되던 해, 그는 처음으로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렇게 서울로 떠났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꼭 돌아오지 않겠다 다짐한 곳에 이상하게 닿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선 서양화를 전공했고, 졸업 직후 동기 몇 명과 작은 공간을 얻어 전시회라는 것도 열어봤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찾아온 사람은 친구 몇, 동네 주민 몇. 전시된 그림보다 더 눈에 띄는 건 행사 끝나고 나눠 먹은 김밥이었다. 그게 현실인 줄 알았다. 누구에게나 초반은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유독 잘나가던 애가 하나 있었다. 실력도 대단치 않았고, 아이디어라고 해봐야 교양 수준이었지만 이름난 교수의 조카라는 이유로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인터뷰가 잡히고, 개인전이 열리고, 갤러리 벽에 사진이 걸렸다. '----입니다.' 라는 작가의 말과 함께. 허탈했다.
작업실 대신 공장에 들어가는 날이 늘었다. 하루 종일 금속 부품을 조립하고, 손톱 밑에 기름때가 박힌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희미해졌다. 그 여자는 그 무렵 잠깐 몸담았던 조립 공장에서 만났다. 점심시간에 여자는 묵묵히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반찬은 간단했다. 멸치볶음, 달걀말이, 김치. 인석은 컵라면 뚜껑을 열며 그녀를 슬쩍 바라봤다. 말을 붙일까, 하다가 접었다. 함부로 묻고 싶지 않은 공기가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뒤, 다른 누군가가 그녀를 “산이 엄마”라고 불렀다. 이름보다 먼저 엄마라는 말로 불리는 사람. 인석은 그게 왠지 마음에 남았다.
하루는 야간 근무를 하던 중 정전이 났다. 모두가 웅성거리던 틈에 '산이 엄마'가 입을 열었다. “창고서 전등 갖고 올테니, 잠시 기다려유.” 그 말에 혼자 가면 위험하니 같이 가주겠다, 한 것이 처음 그 여자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날 이후 둘은 가끔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가 됐다. 이름도, 과거도, 속내도 모른 채.
스무 살의 꿈은 서른이 지나면서 점점 무게를 잃었다.
인석에게는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중간에서 손을 떼는 버릇이 생겼다. 몸도 버텨주지 않았고.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오래전 같은 학원에서 일했던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방에 새로 생기는 학원인데, 자리 하나 났다더라. 소개해줄까?" 인석은 대수롭지 않게 ‘어디요?’라고 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알았다. 그곳이 자신이 떠나온 고향이라는 걸. 그러나 지금은 망설일 여유도 없었다. 서울의 방값은 비쌌고 전기세는 몇 달을 밀렸다. 그래,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냥 잠깐 머무는 거야. “잠깐만 있다 가자.” 입 밖으로 뱉은 그 말은, 돌아가는 걸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이었다. 그렇게 짐을 쌌다. 붓 몇 자루, 스케치북 몇 권. 그렇게 죽어도 돌아가지 않겠다던 그 바다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학원 옥상에 나와 캔커피를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봤다.유치원 벽화들, 낡은 공중전화 부스,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소리. ’여전하군.’ 인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학원 원장은 그에게 “애들이랑 친해져야 장사도 잘 돼요”라고 했고, 인석은 “전 그림 가르치러 온 거지, 인기 얻으러 온 건 아닌데요”라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래도 내심 제가 가르칠 학생들이 어떤 애들일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