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각 뒤 거북이 바위 위에
범 하나 앞발 곱게 모으고 앉아
마고 할미 고추 말리는 거나 구경하고 있다,
할멈 —
할미 고개도 안 돌리고,
오냐
얼라 하나 올라오는 거
할미도 봤소?
봤지
돌계단 위에 텁썩 앉아
나 물 먹는 거 구경 한번
할미 얼굴 한번 보고
홀랑 돌아서는구먼
예까지 올라왔으면
소원 하나쯤은 빌지
할미는 눈 가늘게 뜨고 핼쭉 웃더니,
빌었다
범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할미를 바라본다
뭐라 하오?
일 좀 풀렸으면 좋겠고,
공부는 덜 어려웠으면 하고,
몸 좀 성했으면.
범 앞발 쭈욱 접으며 푸르릉,
코끝으로 바람 한번 기분 좋게 밀어내고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내 내려가서
엿듣는 셈치고 들어주고 올까요?
그럴 것 없다
범이 눈 끔뻑인다
왜요
다 빌어놓고는 갑자기
못 들어준 셈 쳐달라 하던걸
주변 사람들 소원이나 들어주시라고
듣던 범 눈빛 묘하게 말랑해진다
솔잎 위로 바람 한 번 스쳐가고
산새 울음 낮게 들렸다가 멀어진다
범이 입을 뗀다
가끔 그런 애들 보면
참 묘하단 생각이 듭디다
마음은 잔뜩 이고지고 와선
그새 사람 흔적은 온데간데 없다
할멈
어엉
저놈 우리가 데려다 기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