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위에 올려놓은 가방 속에서 드르륵드르륵 문자가 계속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아이들이었다.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강의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방학기간이라 신청을 해도 될지 고민이었지만 꼭 듣고 싶은 수업이라 아이들을 집에 두고 혼자 나왔다. ‘엄마 배고파’, ’언제 와?’ ‘모 먹을 것 없어?’ 벌써 12시였다. ‘간식 먹으면서 기다려. 30분 후면 끝나.’ 아이들은 엄마가 바로 못 온다고 하니 배가 더 고프다고 성화였다. 고민 끝에 5학년 큰애가 참치 주먹밥을 만들어 보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며칠 전 나와 함께 요리한 적이 있는 음식이었다. 간단한 일도 엄마에게 의존하는 아이인데 혼자 만들겠다니! 곧 수업이 끝날 테지만 스스로 해보겠다는 용기가 기특해 격려해 주었다. 2학년 동생과 함께 만들면 크게 도움은 안되더라도 의지는 될 것이었다.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부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마요네즈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까지 문자로 원격 조정하며 요리 방법을 알려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엄마! 참치 뚜껑은 어떻게 따는 거야? ‘
마요네즈에 버무린 참치를 밥 속에 넣어 먹는 참치 주먹밥이다. 그런데 참치 뚜껑을 못 딴다? 혹시라도 아이들끼리 따다가 날카로운 참치 뚜껑에 손을 베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메뉴를 바꿔야 할까 고민했지만 이제 와서 밥을 해 먹겠다는 용기를 꺾을 순 없었다. ‘유튜브로 찾아보고 따라 해 봐. 대신 맨손으로 하지 말고 고무장갑 끼고!’ 문자를 전송했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잘하고 있는지 걱정이었지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연락이 왔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 신경은 온통 집으로 향했고 수업의 마지막 내용은 더 이상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랴부랴 집에 도착하니 식탁 위에 완성된 주먹밥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엄마 몫으로 남겨둔 것이었다. 아이들은 엄마를 보자마자 서로 이 대장정의 무용담을 말하느라 소란스러웠다. 그중에서 제일 큰 업적은 예상대로 ‘참치캔 따기’였다. 큰애는 한 켤레 밖에 없는 고무장갑을 꼈고, 함께 참여하고 싶은 둘째는 필사적으로 ‘빨간 목장갑’을 찾아 끼었다. 평소 눈앞에 보이는 물건도 잘 찾지 못하면서 어떻게 목장갑을 찾아낸 건지··· 제 몫을 하려고 부산했을 둘째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큰애가 먼저 참치캔 따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겁 없는 둘째가 한 번에 성공했다고 했다. "엄마도 참치캔 딸 때 늘 조심스러운데 어떻게 한 번에 딴 거야?" 둘째의 기를 살려줬다. 아마 요리의 대부분은 첫째의 주도하에 만들었을 것이다. 밥에 간을 한 것도 첫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것도 첫째. 삼각형으로 예쁘게 모양을 잡은 것도 첫째일 것이다. 그러나 둘째의 ‘참치캔 따기’라는 한 방이 없었으면 완성하지 못 했을 음식이었다.
작은 손에 빨간 목장갑을 끼니 마치 어른처럼 커진 손이 무적 같아 보였을까? 목장갑이 손만 보호해 준 게 아니라 용기도 주었다. 누나가 아닌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은 둘째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큰 애도 처음으로 혼자 만든 주먹밥이 자신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또한 동생과 엄마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며 베푸는 즐거움도 느끼지 않았을까? 이렇게 완성한 요리는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방학 중 ‘삼시세끼 돌밥 시스템’을 가동 중인 나에겐 달콤한 쉼도 주었다. 비록 부엌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지만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맛있게 주먹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