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인연 속에서도 잔잔한 빛을 낸다
내가 이 친구랑 어떻게 친해졌더라?!라고 생각하면 기억이 잘 나는 사람이 있고 기억이 잘 안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기억이 안 나면 안 날수록 더 친한 것 같다. 처음 관계의 시작에 대한 기억과 친한 정도가 반비례한달까. 넌 얘가 왜 좋아?라고 물어봤을 때 글쎄 왜 좋지? 잘 모르겠어.라는 말에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은 유명한 명언들처럼 많이 사용하고 많이 듣는 말이지만, 뭔가 갑자기 새롭게 느껴졌다. 최근에 나는 관계에 대한 불신과 부정이 가득했고, 그래서일까 자꾸만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유를 찾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고 정의하기 바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그중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서로를 망치는 관계가 되기도 하며, 옆에서 함께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기도 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친하지도 그렇다고 안 친하지도 않았던 애매한 관계였던 사람과 꾸준히 그 애매함을 가지고 있어나가고, 오히려 이렇게까지 잘 맞을 수가 있을까 라며 신기하게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급속도로 친해져서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사람과는 점점 멀어져 가고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애매했던 관계의 사람들이 오히려 날 더 존중해주고 생각해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일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일이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가끔 한 번씩 만나면서, 연락하면서 관계를 이어온 친구들이 있다. 나 조차도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잘 살고 있는 걸까 의심하고 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두려울 때 누구보다 날 응원해주며 믿어주고 좋아해 주는 그런 친구들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에서도 이유를 찾으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날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사랑이 가득해서 너무 고마웠고 울컥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을 줬었는데 내가 주지 않아도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힘이 되는지.
애매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그 관계는 어쩌면 강한빛을 내지 않고 있어서 더 강렬한 빛을 내는 사람들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수많은 인연들 속에서도 잔잔한 빛을 내면서 내 옆에 있던 존재였다. 강한빛을 내던 존재들은 강했던 만큼 빠르게 사라져 버리거나, 내 눈을 아프게 만들기도 했다. 잔잔하지만 꺼지지 않는 그 빛을 낸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고, 그걸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그 빛을 보게 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기를.
난 왜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내가 좋아해 주는 만큼,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은 왜 없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그 마음을 왜 이용하는 걸까. 많은 의심들은 내 눈앞에 검은 막을 씌워버렸고 더 강하고 더 진한 색깔이 아니면, 빛이 아니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진짜는 그 검은 막을 벗겨내고 나서야 볼 수가 있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