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약 Sep 21. 2021

편두통에 대한 선입견

편두통 진단/발견이 늦은 이유

선입견이 눈을 가렸다



나에겐 편두통의 특징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편두통의 대표적인 증상은 오심/구토이며, 환자의 90%가 오심을 보이고, 50%가 구토를 수반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 구토는커녕 오심 증상도 전혀 없었고, 편두통의 특징인 맥박이 뛰는 듯한 '박동성' 두통 또한 시일이 많이 지나서야 (편두통 진단을 받을 때쯤)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두통 발작을 예고하는 단계인 전구 증상(기분변화, 경계심, 공복감, 하품 등)이 없었고, 편두통 발작 전에 오는 전조 증상(조짐, aura)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머리 통증과 편두통을 연관시키지 못했다.















편두통의 분류



편두통은 전조 증상(조짐, aura)의 유무로 쉽게 분류할 수 있는데, '조짐을 수반한 편두통'은 '조짐이 없는 편두통'보다 그 빈도가 적다. 실제 편두통 환자 중 조짐이 있을 확률은 많아야 30% 정도로, 전체 편두통 환자 중 일부만 전조 증상을 경험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짐이 없으면 편두통이 아니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조짐은 편두통의 고유한 특징이라서 나도 모르게 조짐이 있어야만 편두통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조짐이 있는 편두통 = 고전적 편두통 (classic migraine) = 전형적 편두통

조짐이 없는 편두통 = 일반적 편두통 (common migraine) = 비전형적 편두통







조짐(aura)은 두통이 오기 전에 혹은 두통과 함께 나타나는 증상이다. 조짐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유무로 편두통을 분류하기 때문에 편두통을 떠올리면 조짐(aura)을 연계하여 떠올리기 쉽다. 왠지 편두통은 조짐이 있어야 할 것 같고, 편두통의 고유한 특징이 조짐인 것 같고..(편두통은 조짐이지~)

그러나 실제로 전조 증상(조짐, aura)이 있는 편두통 발작은 전체 편두통의 20~30%에 불과하다. 나의 경우, 편두통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지식이 선입견이 되어 오히려 편두통 발견을 늦추게 만들었다.














두통에 관한 선입견 2



나는 두통을 만성적으로 겪으면서도 내가 편두통 환자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좀 더 내밀한 마음속을 살펴보면 편두통 환자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의사도 의산데, 약사인 내가 신경과를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게 아닐까.


어떤 질병이든 질병에 대한 선입견이 있겠지만, 편두통 하면 나는 히스테릭한 여성이 떠오른다. 특정 이유 없이 신경질을 내는 나이가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30-40대의 여성. 생각은 꽤나 구체적이다. 그러나 특정 나이대의 날카롭고 예민한 성정의 여성이 떠오르는 게 그저 나의 선입견일까?


결과론적으로 나는 이 선입견이 어느 정도 사실을 기반하여 생기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남자보다 여자가 3:1 정도의 비율로 더 많이 편두통을 겪으며, 전체 여성의 18%, 전체 남성의 6%가 편두통을 경험한 적이 있다. 또 두통 발생 빈도는 30-49세 여성과 남성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 30~40대 여성이 편두통에 가장 취약한 집단인 것이다.





나는 예민하고,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들이 쉽게 두통을 겪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평탄히 넘어가는 일에 쉬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두통을 흔히 겪는게 아닌가 싶었다. 본인이 스트레스 안 받고, 마음을 편히 가지면 나을 것 같은 느낌. 자의로 조절할 수 있는 기분 문제처럼 말이다.


실제로 편두통을 일으키는 유발요인 중에 스트레스가 있다. 편두통은 여러 유발요인이 중첩되어 발생하므로 스트레스만으로 두통 발작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스트레스라니. 이 얼마나 본인을 탓하게 쉬운 이유란 말인가. 사소한 일에 쉽게 영향받아 내 머리가 아프다 생각하면 내가 무척 나약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은연중에 나는, 흔히 말하곤 하는 '마음을 곱게 쓰진 못하는 깐깐한 여성'이 걸리는 질병이 편두통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기로 위와 같은 생각은 드러난 결과가 같을 뿐, 전후관계가 뒤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편두통 환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예민함과 날카로움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두통에 시달리기에 만성적인 고통이 이들을 그렇게 바꿔놓은 것이라고 말이다.


아프면 보통 사람도 평소보다 더 신경질적이고 쉽게 짜증을 낸다. 그에 더해 편두통 환자는 두통과 같이 겪는 대표적인 증상인 빛 공포증, 소리 공포증 등으로 인해 훨씬 더 손쉽게 예민해졌을 것이다.









덧붙이며+)



설사 성격이라 한들 그게 아플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일 정말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 때문에 두통이 발생한다 해도, 오롯이 스트레스라는 하나의 요인으로 두통이 발생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편두통을 일으키는 유발요인 중에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싶어서 받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원치 않게 스트레스 받는 것도 억울한데 아프기까지 해야 하다니! 안타깝지 그지없다.

언젠가 난 생각했다. (이때 처음으로 편두통에 대한 내 선입견을 어렴풋이 인식했던 것 같다) 내 아픔을 성격과 연관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편두통은 성격이나 개인의 성향 때문이 아닌 그저 질병일 뿐이라고.


지금까지 나는 (이 성격으로도)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내 성격 탓을 하면 할 말이 없다. 남들(어딘지 모를 누군가)는 못된 성격으로 잘만 살아갈 텐데, 세상을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본다고 그 이유로 아프기까지 하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오히려 양심이 살아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이전 10화 편두통은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