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Oct 03. 2024

캐리어 들고 학교에 간 이유

내일은 재량 휴업일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24인치 캐리어 하나에 짐을 가득 그리고 배낭도 하나 챙겼다. 동동이 어린이집 가방까지 모두 차에 싣고 학교로 향했다.


내일은 기다리던 재량휴업일.


샌드위치 데이에 쏙쏙 집어넣었던 재량휴업일이 바로 내일이다.




휴일이 4일이나 된다. 집에 있으면 정말 푹 쉴 수 있지만 왠지 집에 있기는 아깝다.


다들 어디로 그렇게들 가는 걸까. 뒤늦게 핸드폰을 붙잡고 이곳저곳을 알아봤다. 일본 가는 비행기는 3인 가족 100만 원을 훌쩍 넘고,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는 적당한 시간대가 모두 매진이다.


코레일에 들어가서 기차표를 알아본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강릉행 기차표를 검색했다.


정말 강릉에 가고 싶은 거야?

나에게 묻는다.




글쎄, 진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평창?


가끔 평창에 가고 싶다.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러 평창에 가면 하늘을 드높고 구름은 아름다웠다.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도, 간간히 풀을 뜨고 있는 소들도, 산속에 숨어 있는 마을들도 정겹기만 하다.


그렇게 평창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여행용 짐을 차에 두고 핸드폰과 차키만 들고 교실로 향했다. 평소 챙기던 가방도 없이 맨몸으로 교실로 들어섰다.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에도 얼마큼의 의식은 차 안에 있는 여행 가방에 가 있다.


주말부부 시절 금요일마다 캐리어를 들고 학교에 출근했다. 퇴근하자마자 강릉행 기차를 탔다. 역에 나가면 신랑이 마중 나와있었다. 그때 우리는 신혼부부였다.


벌써 결혼 6년 차, 오늘은 그때처럼  서울역으로 향할 것이다.




역에 차를 주차해 놓고 비로소 짐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동동이 휴대용 유모차 하나, 무거운 백팩하나, 그리고 나의 청록색 캐리어.


겉모습만 보면 강원도 평창으로 여행 가는 짐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떠날 것 같은 모습이다. 둘이서 그 모든 짐을 가지고 서울역으로 간다.


우리는 짐이 많고 느리다. 그 와중에 동동이가 화장실에 가서 큰일이라도 보려고 하면 난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간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다.


천천히 캐리어 바퀴가 굴러간다.




짐이 가벼운 빠르게 걸을 수 있는 사람들 그 사이를 걸어가면 우린 느린 코끼리 같다.


임산부일 때적 횡단보도에서 뛰지 못했던 나는, 어느 날 다시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아이랑 엄마랑 단둘이 나서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느려서 불편하다고 해서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우리는 토끼정에 들어가 동동이와 메뉴 하나를 나눠먹었고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한 신랑이 먹을 햄버거 세트도 하나 샀다.


그리고 기차 출발 10분 전 드디어 신랑을 만났다!


떠나자!

그곳에선 나 자신을 질질 끌고 다니지는 말자.

새로운 나를 만나자!


사람들이 누군가는 여행을 다녀와서도 나아진 게 전혀 없다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자기를 지고 다녀온 모양이지"

- 에세 1, 몽테뉴





이전 12화 내 손에 있던 그 책이 품절이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