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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Oct 30. 2024

애착 이불 언제까지 들고 다닐까?

매일 아침 이불을 찾는 동동이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잘 가던 동동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들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불은 내 거야! 이불이랑 같이 있을 거야!"


아침마다 울음으로 출근 준비를 하니 정신이 아찔하다.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면 결국 어린이 집에 가서는 이불 정리를 잘하고 잘 논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린이집에 가면 선생님 말을 잘 듣는데 문제는 집에 와서 솔직한 마음을 터뜨려 놓는 것이다.





"싫어, 싫어. 이불은 내 거야."


이제 내년이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니 선생님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불을 떼어 놓으려고 하신다. 그래서 집에서도 이불을 넣는 장소를 마련해서 보관했다가 잘 때만 꺼내라고 말해주셨다.


하지만 막상 그게 쉽지 않다. 어린이집에서의 보상 작용으로 집에서는 더욱 이불을 찾는다. 게다가 컨디션이라도 안 좋은 날에는 꼭 이불이 필요하다.


아, 언제쯤 이 이불을 그만 들고 다닐 수 있을까?




하루는 1학년 형님들에게 물었다. 혹시 애착이불이나 애착인형이 있냐고. 그랬더니 아이들은 저마다 손을 들어 발표를 했다.


"있어요! 저는 코끼리 인형이요."

"저는 이불이 있어요."


아이들은 저마다 애착물건이 있었다. 다만 학교에 들고 오는 아이가 없었을 뿐이었다.




아이가 처음 이불을 만났을 때, 이불에 애착을 넣어준 건 나였다. 아이가 역류방지 쿠션에 누워있을 때 내가 이불을 주었다. 그냥 덮어준 게 아니고 날려주었다.


위에서부터 얇은 이불이 하늘하늘 바람을 타고 아이에게로 내려앉았다. 아이는 내려오는 이불을 보고 까르르 웃었다.


볼 탱탱 시절의 동동이

이불에 그려진 사자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도 굉장히 이른 시기였다. 그 덕분에 사자랑 머리가 비슷한 증조할머니의 별명은 '사자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이불을 가지고 있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네가 원한다면 이불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공동생활이 그렇지가 않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만약 누군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이불을 가지고 왔다면 나는 분명 돌려보냈을 것이다.




어린이집 하원을 하고 가방에서 다시 꺼낸 이불을 만난 동동이. 동동이는 언젠가 8살이 되어서 엄마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을 한다.


"동동아 학교엔 이불을 가져갈 수 없는데 괜찮겠어?"


이불을 꼭 쥔 손이 뾰로통하다.




아이가 자라나는 단계 단계마다 크고 작은 고민들이 생겨난다. 이앓이가 심해서, 새벽 수유를 끊어야 해서, 기저귀를 떼야해서. 그 단계마다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 지나간 것을 안다.


애착 물건을 여전히 좋아하는 1학년 아이들을 보니, 이제 내년 2월이면 만 4세가 되는 동동이에게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날들도 지나가니까. 네가 이불을 부르짖으며 우는 아침도 언젠가는 끝나겠지.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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