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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Oct 18. 2024

엄마 밥이 먹고 싶지만, 엄마는 없으니까

어느새 엄마가 되어버린 우리

지친 날이었다. 주말 스케줄이 너무 무리였던 탓인지 일요일에 몸살로 앓아누웠다. 월요일엔 죽도록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그래도 어떻게 학교엘 안가. 열도 안 나는데. 선생님이 아프다고 학교에 빠지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꾸역꾸역 학교에는 왔으나 막힌 기분이 들면서 우울하고 슬퍼졌다. 온몸에 힘도 없고 눈빛도 풀려있고 누워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아직 수요일이었고, 교육청 출장이 있는 날이었다. 아... 이 출장을 가야 해? 병원에도 못 가고 있는데 정말 이걸 가야 해?


막상 부장님께 못 가겠다는 말은 못 했다. 가서 이름이라도 적고 오자. 그런 마음으로 또 꾸역꾸역 출장을 갔다.




교육청까지 다녀와서 동동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향하니 눕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오늘은 약속이 있다. 동동인 친구이면서 나의 친구이기도 한 아이 엄마와 아파트 어린이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이 친구, 오늘 하루 나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냈다. 새벽 3시부터 원인 불명의 알레르기로 응급실에 다녀왔는데 출근까지 했단다. 연가를 다 써서 더 이상 쓸 연가도 없다고.


내 힘든 날을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친구가 도서관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힘들게 분명한데 아주 열심히 읽어준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나도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한 시간쯤 놀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


아빠들은 둘 다 오늘도 늦게 온다고 하고, 우리는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말을 했다.


"집에 뭐가 있나 보고 올게."


집에 가서 먹을 거라도 가져오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던 우리 집 냉장고에 먹을 것이 많이 있는 것이다. 소고기 한팩이 냉장고에 며칠째 놓여 있었다. 나는 당장 전화를 했다.




"소고기 있어! 구워 먹을까?"


그렇게 말하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친구집에서 고기를 직접 굽고 플레이팅도 예쁘게 해 보고 친구네 집에서 끓인 김치찌개도 놓았다.



그러고 나니, 정말로 먹고 싶었던 엄마의 밥상이 완성되었다.



" 엄마 밥이 진짜 먹고 싶었거든. 근데 아무래도 입맛도 없고, 혼자서는 고기 굽기도 싫고 그랬는데. 지금 이 밥상이 꼭 엄마가 해 준 것 같아."


그렇게 엄마가 된 우리는 서로를 위한 밥상을 차려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는 사이, 아팠던 것이 다 나은 것만 같은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


어쩌면 진짜로 아파서 서러운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


감사하고 감사한 밥상이었다. 밥 한 공기를 싹싹 긁어서 다 먹고, 동동이가 남긴 미역국도 원샷해버렸다.


이런 날 함께여서 고마워 친구야. 너와 함께 먹은 밥이 나에겐 보약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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