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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Oct 17. 2024

나의 아이가, 나를 죽이러 온다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이것은 영화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스토리는 엄마 '에블린'과 딸 '조이'의 관계이다.


조이는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딸이다. 조이는 레즈비언 연인을 가족모임에서 소개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그런 사실 자체를 무시하려고만 하고, 엄마는 조이에게 뚱뚱해졌다며 비난을 늘어놓는다. 


엄마는 딸 조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혼자 떠안으며 자신 만의 세계 안에서 엄청나게 바쁘기 때문이다. 





조이의 무력감. 아무것도 할 수 없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 그럼에도 엄마는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서 딸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수많은 우주에서 조이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아주 강력한 존재. '조부 투파키'이다. 우주적인 악당 '조부 투파키'는 수많은 우주에서 에블린을 죽였다. 




나는 '에블린'이었다. 


삶은 불만투성이었다. 나만 바쁘고 다른 사람들은 너무 느긋하게만 보였다. 동동거리며 일을 해내려 해도 잘 되지 않고 더 엉망으로 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동동이를 윽박질렀다. 윽박지른 이유는 에블린 보다 더 유치하다. 자기 전에 정리하고 자야 한다고 했다. 졸려서 씻기 싫다는 아이에게 씻고 자라고 했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매일 청소를 한다고, 너는 왜 매일 어질러 놓기만 하냐고 했다. 


4살짜리 동동이는 울었고 정리했고 씻었다. 그리고 옷을 입기도 전에 너무 졸려서 잠들어 버렸다. 나는 동동이가 잠들어 버린 집에 혼자 남아서 멍해졌다. 


그날 밤에 이 영화를 봤다. 




조이가 '조부 투파키'로 변했을 때, 동동이를 상상했다. 난 어쩌지. 4살이어서 아직 작고 어리지만, 언젠가는 나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동동이. 


다른 우주에서는 내 아들이 아닐 수도 있고, 나보다 더 어른일지도 모르는 동동이. 동동이가 갑자기 어른처럼 느껴지면서, 내가 동동이만큼이나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 




나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내보냈지만, 나의 소유는 아니다.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거고 자신만의 삶을 살 거다. 지금도 그렇고 어른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8살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은 클 거고 나는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고 말 거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도 어느 우주에서는 나보다 크고 강력한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그 모두에게 쫓기지 않으려면 지금 잘해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에블린은 조부와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조부 투파키는 모든 우주의 삶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주 잠깐 동안 조부가 떠나고 자신의 사랑스러운 '조이'가 돌아왔다. 조이를 죽여야 한다고 다른 우주에서 온 아빠가 말하는데, 에블린은 돌아온 딸을 죽일 수가 없다. 


조이는 결국 딸을 풀어주고 딸과 함께 도망친다. 





에블린은 조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조이가 '조부 투파키'가 되어도, 끝까지 그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뒤늦은 노력은 결국 성공한다. 


너의 길을 걸어. 

어떤 길을 걸어도 괜찮아. 

나는 그냥 네 곁에 있어줄게.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48시간 동안 나는 정말 착해졌다. 친절한 엄마, 사랑스러운 아내, 너그러운 선생님. 


가장 놀라웠던 건, 학교에 갔더니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다 큰 성인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장난치고 모자라고 더 커야 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어떤 존재. 


지금은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자꾸 까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동이가 나를 찾아오지 않도록, 






* 사진: UnsplashStoriès ,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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