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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요가 수행자 Oct 14. 2024

수천 번의 삶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면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이것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많은 책들에서 말해왔다. 시간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순으로 흘러간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의 착각이라고 사실 모든 순간은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고.


애초에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한 것도, 1년을 12달로 정한 것도 인간인 만큼 시간은 우리가 만들어낸 어떤 것에 불과하다.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우리는 그 커다란 우주에서 '지금'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수많은 내가 우주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생각뿐이었던 그 삶을 영화가 보여주었다.


 





이 포스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나에게 포스터를 보여주고 영화를 보라고 했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이 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에 하나뿐인 영화관에 찾아간다는 말을 듣은 그날 밤, 핸드폰의 작은 화면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영화의 여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수천번의 삶을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책 '싯다르타'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다.


그는 친구 싯다르타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했고, 그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얼굴들, 수많은 얼굴들, 일련의 길게 늘어선 얼굴들, 수백수천의 얼굴들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았다.


그 모든 얼굴들은 왔다가 사라졌고, 모든 얼굴이 동시에 현존하는 것 같았다. 모든 얼굴은 끊임없이 변하여 새롭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얼굴들은 모두 싯다르타의 얼굴이었다.


그는 물고기의 얼굴, 끝없는 고통에 못 이겨 입을 벌리고 있는 잉어의 얼굴, 흐린 눈빛으로 죽어가는 물고기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울음을 터뜨리려고 찡그리고 있는, 붉고 포동포동한 주름이 잡힌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얼굴도 보았다. 그는 어떤 살인자가 누군가의 몸에 칼을 찌르고 있는 것을, 그 얼굴을 보았다.


같은 순간, 그 범죄자가 결박당해 꿇어앉아 사형 집행인의 칼에 머리가 잘려나가는 것도 보았다. 그는 벌거벗은 채 온갖 체위로 맹렬한 사랑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남녀들의 몸을 보았다. 그는 조용히, 차갑게, 공허하게 몸을 쭉 뻗고 있는 시신을 보았다.


-싯다르타, 헤르만헤세 




싯다르타를 읽고 나서 그 얼굴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싯다르타의 미소가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에는 좀 더 쉽게 그 모든 삶에 대해 대신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사는 지금의 삶, 그리고 수천수만 번의 다른 삶들. 삶들을 모두 살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주인공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모든 생은 처음이다.

하지만 그 모든 생은 전부 우리에게 흔적으로 남아있는 지도 모른다.


소중한 이번 생의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일상의 작은 기록들을 남겨보려고 한다.








아, 이 영화는 삼류가 아니다.

이렇게 상도 많이 탔으니

시간나면 한 번 보시길.

 

상을 쓸어 담은 영화









*** 영화 본 사람만 누르기 ***

https://youtu.be/SgyAIy0iF40?si=m1cjxwVPoc9urPAz

https://youtu.be/tP0xrERvEp8?si=OTBeqtk4uaxoCHkD



* 사진: UnsplashGreg Rako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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