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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Jul 15. 2023

기록은 바통터치 구간에서 결정된다

공유하는 목표와 가치, 연습된 루틴이 바통터치 구간의 팀워크를 좌우한다

효과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효율적으로 가치를 전달하는 계주경기 


경영학에 입문하면 처음 접하는 질문이 기업의 존재 이유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항상 정답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라고 배웠다.  이 본원적인 질문과 대답에 대해서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왜, 그리고 어떻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기업은 사람이나 식물처럼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같아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성장을 지속해야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유기체는 세포 분열이 멈추는 순간 죽게 된다.  우리 인간도 부지불식간에 항상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기업도 매년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중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우상승하는 막대그래프와 함께 살아간다.  심지어 사장님이 지시하지 않아도 부서는 새로운 목표에 대해 약속을 하고 달성을 위해 매진한다.  몸속 세포나 기관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분화하는 것처럼…  


어떻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까?  경영전략의 대가 마이클 포터는 1985년 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이라는 개념을 발표하고 생산, 판매, 사후서비스 등 일련의 경영 활동을 가치를 창출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프로세스로 정의했다.  가치 창출 및 전달 활동은 부서와 팀, 공급업자, 협력업체, 고객 등이 연결되어 공통의 가치를 창출하는 가치 네트워크(Value Network)를 형성한다.  가치 네트워크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통해 이윤이 창출되고, 이윤의 크기도 결정된다.  독주가 아닌 계주에 가까운 활동이다.  가치 네트워크 속에 연결된 개별 플레이어들의 독주 구간 속도도 중요하지만 바통터치 구간에서 협업이 필수적이다.  앞주자와 뒷주자가 동시에 달리면서 바통터치를 하는 예비구간과 바통터치 구간의 효율이 곧 기록(이윤의 크기)을 좌우한다.      


우리는 일을 할 때 고객만족, 정확성, 편리성, 무해성 등과 같은 가치지향적 공동 목표보다는 정량적 목표 달성에 집중한다.  그 결과 실행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해결을 위한 의사결정도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기준보다는 문제해결 결과와 관련된 숫자에 집중한다.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공동으로 창출해야 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가치 네트워크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코치가 계주 주자들에게 각자의 구간에서 열심히 뛰라고 만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개별 주자가 아무리 좋은 기록으로 자신의 구간을 달려도 바통터치 구간에서 비효율이 발생하거나 바통을 떨어 뜨리면 기록은 바닥을 친다.  가치사슬과 가치 네트워크 속에 수직과 수평으로 존재하고 있는 내외부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와 가치에 기반한 루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전체 최적화를 회복할 수 있다.   


올바른 바통터치 행동과 루틴을 가지고 있는 잘 훈련된 팀이라도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 개인의 컨디션에 따라 바통을 언제든지 떨어 뜨릴 수 있다.  계주에서는 개인 독주구간에서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바통터치 구간에서 바통을 떨어뜨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기록을 좌우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한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갈등과 불통의 관계가 일상화된 조직에서 가치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내부 직원, 공급업자, 고객사 등에 단편적인 역할과 책임 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공동의 목표를 상기시키고 창출해야 하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명확하게 공유해야 한다.  육상경기에도 코치와 선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발이나 유니폼과 같은 장비 공급업체, 개인의 신체상태를 끌어올리는 트레이너, 재활 담당 코치 등 많은 사람과 팀이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기록 경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효율성'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협업하고 있다.


바통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바통터치의 효율성을 높일지 


식품, 음료, 위생용품 등은 흔히 일용소비재(FMCG, Fast Moving Consumer Goods)라고 한다.  비교적 저가격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판매 회전이 매우 빠른 특성이 있다.  불특정 다수의 고객이 다양한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불량이 발생하면 파급효과가 커서 하루아침에 브랜드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다.  몇 해 전 발생한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처럼 논란의 중심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파급효과가 커진다.  개인 위생용품을 생산, 판매하는 회사의 최고 운영책임자(COO, Chief Operating Officer)의 고민에 귀 기울여 보자!  이 회사는 품목당 판가가 1,000원 미만인 제품을 하루 20만 개 내외로 생산한다.  매월 100개 내외 품목을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으로 생산하는 회사로 국내 최고 수준의 기계설비와 품질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회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장 판매량의 변화에 따른 고객사들의 수급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영업팀은 한 달 내내 고객사 구매팀원들로부터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고객사들은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프로모션 등에 따른 판매량 변동에 따라 주문량을 늘리거나 생산품목을 교체하는 등 탄력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무리한 요구와 급발주가 많았다.  시장에서 오는 수급탄력을 OEM 제조사에게 그대로 전가시키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영업팀에서는 고객의 요구를 생산팀에 전달해서 생산계획 변경을 요청하고, 생산팀은 작업자와 오퍼레이터 운영계획을 재조정하면서 구매팀에 원부자재의 재고 확인을 요청하고, 구매팀은 추가 발주해야 하는 품목에 대해 공급업자에게 전화를 해 납기를 독촉하는 수순이다.  고객사에서 아침에 전화가 한통 걸려오면 하루 종일 영업팀, 생산팀, 구매팀, 물류팀이 핑퐁을 치면서 확인을 하고 최종적으로 새로운 버전의 생산계획이 전사에 공유된다.  


영업팀은 새로운 생산계획에 의거하여 고객사에 재조정된 수급 일정을 알려 준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하루의 일과가 이런 것이었다.  물론 고객사의 급발주 요청을 잘 받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 계획이 변경될 때마다 값비싼 원부자재 재고가 창고에 쌓이고, 생산 현장에서는 품목 변경이 많아짐에 따라 단위시간 생산성도, 품질 수준도 하락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OO는 고객사로부터 월별 선주문을 받고, 리드타임 등 급 발주의 원칙들을 고객사와 공유하고, 회전이 빠른 제품은 완제품을 일부 재고로 가져가기도 하면서 수급과 생산성, 품질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문제해결 과정에서 팀 간의 업무에 바통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생산계획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납기지연, 생산성 하락, 품질불안정, 재고증가, 원가상승 등 모든 경영 이슈의 중심에 생산계획의 수립과 변경, 그리고 그에 따른 부서 간, 부서와 공급업자와의 불완전한 소통이 존재하고 있었다. 


생산계획이 변경되면 특정 부자재가 부족해 생산차질이 발생하거나, 전체 원부자재 과재고로 창고부족 문제도 유발되고, 인력운영의 어려움으로 고객과 약속한 납기를 지키지 못하기도 하며, 동일한 품질사고가 동일 품목에서 지속되는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회의실에서는 생산계획을 중심으로 이런 종류의 문제들에 대한 이슈해결 회의가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뒷주자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이지 않으니 앞주자가 예비존에서 미리 가속을 시작할 수 없었다.  바통 터지 구간에서 부서 간 그리고 부서와 협력업체 간에 정보 손실이나 오해가 발생하는 등 바통이 떨어지거나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못해 생산성은 급락하고 고객과의 품질과 수급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생산계획이라는 바통이 어디까지 왔는지 모두가 볼 수 있다면, 가치 네트워크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한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바통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기록은 단축될 것이다.  


바통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COO는 무의미한 제품 샘플과 전시용 수석으로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장식장을 개조하여 눈에 보이는 생산계획을 만들었다.  10대의 기계와 7일간의 생산계획을 눈에 보이게 하기 위해 70칸의 공간을 가진 장식장을 만들었다.  생산팀은 생산계획에 따라 해당제품 표준 샘플과 생산 지시서를 해당기계와 해당일자 칸에 비치하였고, 구매팀은 해당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원부자재 재고 및 발주현황, 입고 예정일과 업체명을 표로 만들어 비치하였다.  품질팀은 해당 품목의 품질 관리 착안 사항을 비치하고 품질사고 이력이 있는 표준 샘플에는 빨간색 원형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매일 오후 1시 15분부터 30분 동안 생산, 품질, 구매, 영업팀장이 일어선 상태에서 장식장을 오가며 일주일 분의 생산계획을 확인하고 조정했다.  일명 ‘첵첵첵’ 미팅을 실시했다.  부자재를 체크하고, 품질사고 이력을 체크하고, 인력배치와 생산계획 변경을 체크하는 회의였다.  생산계획 장식장 앞에는 매일매일 활기찬 대화와 토론, 그리고 웃음이 피어났다.    


일어선 상태에서 실물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간결한 회의는 모든 팀들이 소통하면서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매개체가 되었다.  또한 생산성을 향상하고 고객 대응력을 개선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팀원들 간에 그리고 팀 간에 벌어지던 불필요한 언쟁과 오해도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생산계획, 공유한 이슈들은 앞주자와 뒷주자 간의 효율적인 바통터치의 루틴이 되었다.  이슈의 선명성과 이슈 해결을 위한 이해관계자 간 명확한 역할과 책임으로 가치 네트워크 속에 존재하는 공급업자, 협력사와의 소통도 원활해졌다.  첵첵첵 미팅은 일주일 분의 생산계획에 대해 생산, 품질, 구매, 물류 등에서 각각의 이슈사항들을 예측하고, 공통의 QCD(Quality, Cost, Delivery) 목표와 고객 대응력 강화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협력적인 가치 네트워크 속에서 생산 계획이라는 바통을 쳐다보면서 효율적으로 바통을 터치할 수 있었다.

    

공급업체는 얼핏 보면 가치사슬의 외부에 존재하는 듯 하지만, 가치 네트워크의 내부에 존재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  공급업체의 품질, 납기, 비용 문제는 모두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품질관리의 경우에도 일용 소비재의 원부자재를 입고 시 전수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수량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검사 중에 외부적인 오염이나 품질저하가 발생할 수 있기도 하다.  정기적인 성분검사나 샘플 입고검사를 하게 되지만 품질사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원부자재 공급업체의 품질불량은 OEM 제조업체의 품질불량으로, 그리고 브랜드 회사의 품질불량으로 부지불식간에 전이된다.  우리 회사, 우리 팀이 창출하는 가치 네트워크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원부자재 공급업체의 품질 불량은 평상시에 관리하기도, 사전에 발견하기도, 사후에 밝혀내기도 어렵다.  공급업체에 단가 인하와 납기만을 독촉할 것이 아니라 가치 네트워크 속에 존재하는 파트너로 인정하고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지속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가치 네트워크 속에 존재하는 주체들과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를 공유해야  


위의 사례들에서 보듯이 비효율적인 조직에서는 리더가 문제해결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팀원 간, 팀 간의 공식 비공식적인 조정에 사용하게 된다.  둘이 동시에 달리면서 바통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이 갈등은 가치창출을 방해하거나, 창출된 가치를 훼손한다.  그래서 턴어라운드 리더는 항상 회의를 통해서, 면담을 통해서 지향해야 할 공동의 가치와 가치 네트워크를 선명하게 부각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생산계획과 소통의 루틴을 만들어 생산성과 품질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고객 대응력을 높이는 것이 OEM 제조업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것을 공유해야 한다.  또한 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가상의 한 팀으로 일하는 원부자재 공급업체, 물류업체 등 가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곳을 가치와 목표에 기반한 신뢰관계로 묶어야 한다.  한 팀으로 일할 수 있게 유도하고 관리해야 한다.  


바통의 저주는 바통터치 구간에 내려진다.  리더는 신뢰로 연결된 가치 네트워크 속에서 소통과 루틴을 통해 바통을 떨어뜨리는 저주를 풀어야 한다.  바통을 떨어 뜨리는 확률도 낮추고, 바통을 주고받는 주자 간의 효율성도 극대화해서 둘이 같이 뛸 수 있는 예비구간과 바통터치 구간에서 기록을 단축해야 한다.  계주에서 비슷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팀들의 승패는 바통터치 구간에서 결정된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협업의 구간에서 바통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바통터치의 루틴을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비로소 팀워크의 꽃은 피어나고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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