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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KA Nov 14. 2022

무봉산 백패킹, 기묘한 산행

산에서 얻은 깨달음


선자령을 다녀온 후 강추위가 몰려오기 전 마지막 백패킹을 구상해 본다.


멀리 갈 순 없고 내가 거주하는 화성 인근으로 찾아보는데 '무봉산'이 눈에 들어온다.


동탄면 중리와 목리, 신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화성시에서는 가장 높고(362m) 큰 산이다.



코스는 만의사 주차장인 ①코스로 시작하여 무봉산 정상까지 가는 코스로 잡았다.


만의사 사찰 안에서 시작되는 ④번 코스로 가면 상당히 빠를 것 같았으나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산세가 상당히 험하고 현재는 폐쇄된 등산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팩을 꾸리고 나니 얼추 23~4kg에 육박한다.


욕심이 과했다


만의사 주차장에서 무봉산 정상까지는 대략 1.9km 정도이며, 나처럼 무거운 백팩을 메고 올라갔을 때 정확히 세 번 쉬다 가니 1시간 12분이 소요됨을 볼 수 있었다.



등산로 안내도 옆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일단 시작부터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되기에 초반부터 땀 꽤나 흘리게 만든다.


가파른 계단과 아흔아홉고개가 도사리지만 그래도 군데 구데 설치된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세 번 정도 쉬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1시간 10여 분 만에 정상에 도착하는데 도착하자마자 바로 비가 와 거쳐왔던 정자로 내려간다.



비를 피해 사람들이 정자로 모여들고 저마다 한 마디씩 나에게 해대는데 마치 내가 장작불이라도 피워 바비큐라도 해 먹을 것처럼 보였나 보다.


비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저마다 갈 길로 흩어지지만 궂은 날씨에도 등산객들은 쉴 새 없이 오르고 결국 일기예보는 정확도 99%의 확률로 구름 비를 몰고 오고 있었다.


건강 검진으로 인해 단식 겸 40시간이 넘도록 먹은 거라곤 병원에서 준 두유 한 잔이 전부였는데 자리를 펴지 못하니 이도 저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산에서 처음 느끼는 음산함.


안 되겠다 싶어 비가 쏟아지기 전에 하산을 결심하고 서둘러 내려온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 문을 열려하니 열리지 않는다. 허리 색에 넣어둔 차 키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차도 없어 급한 마음에 내 차 옆으로 배낭을 풀러 놓고 뛰다시피 다시 오른다.


제일 오래 머무른 정상인 근 정자까지 가보지만 역시 키를 찾을 수 없었다.


날은 깜깜해졌고 비는 쏟아지고 라이트 하나로 바닥을 훑으며 내려오는데 역시 키가 없다.


이쯤 되니 누군가 나를 붙잡아 놓으려는 묘한 기분이 몰려온다.




무봉산 만의사,


만의사 사찰 주변 주차장에 주차를 해놓았고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지붕 있는 에어건이 설치된 곳에서 짐을 옮기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플랜>


1. 중간 지점 데크에서 비박을 한다.

    - 두 번이나 오르내렸기에 체력이 고갈되어 있어 무거운 배낭을 짊어 메고 오르기가 부담

    - 비박을 하더라도 아침에 차 키를 찾을 때 배낭을 메고 다닐 수 없다는 것


2. 카카오 택시로 복귀하고 키를 가지고 내일 다시 온다.

    - 외진 곳이라 차가 잡힐지가 의문


일단, 비가 제법 쏟아지니 두 번째 계획으로 선회하는데, 중요한 건 외진 곳이다 보니 차가 안 잡힌다.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어가 있다.


아내는 가게 문 닫고 저녁에 친구 상갓집 가야 한다고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 모습이 기억나 전화도 못 한다.


마침내 언 1시간 만에 '카카오 벤티'가 잡히고 타보고 싶었던 '스타리아'를 타고 집에 도착한다.


일반 택시의 2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며 차 안에서 나태해지고 경솔했던 내 행동들을 되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대략 24kg 정도 되는 배낭을 짊 어매고 오르고 내린 것도 힘들지만 다시 또 뛰어 올라갔다 내려온 게 컸던 것 같다.


처음 주짓수 체육관에 등록하고 운동할 당시 일주일 동안 토 나올 것 같은 느낌과 어찌나 똑같던지...


전쟁터에 처자식을 버려두고 온 불편한 마음 가득 안고 쥐가 나는 발과 다리를 달래 가며 잠을 청한다.




다음날 새벽 5시,


피곤한데도 눈이 떠진다. 하필 보조키가 회사에 있어 회사로 간다.


회사를 오가는 데만도 2시간이 소요된다.


와이프 차로 새벽같이 회사를 다녀온다


내가 벌려 놓은 일이니 누구 도움도 못 받겠고,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만의사 주차장으로 간다.



7시 38분,


내가 가운데 기준을 서서인지 옆에 바짝 차를 세워 놓으신 분이 보였다.



AM 7:38


일단 차 주변을 샅샅이 뒤져본다.


하지만 없었다.


그렇게 정상까지 오른다.




8시 25분,


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쉬지 않고 올랐지만 40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어젠 쉬는 시간 포함해 1시간 10분이 소요됐었다.


다음에 오면 30분이면 오를 것 같다.


그러나 역시 키는 없었다.


체념하며 어제 못 남긴 인증샷을 남긴다.



9시 1분,


포기하고 하산하던 중 눈에 딱 들어오는 물체가 보인다.


분명 아까까지 아니 어제도 없었다.


누군가 주워서 의자에 올려놓은 것 같다.


큰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9시 48분,



감사한 마음 가득 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이 주는 교훈,


이번 산행에서 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부주의와 계획적이지 못한 행동이 보란 듯이 가르침을 내려준 것만 같았다.


결국 1박 2일 고스란히 써가며 심지어 3번의 산행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시간을 통해 경솔했던 어제의 반성과 함께 느슨 해진 삶에 경종을 울려준 계기가 되었다.


모든 일은 결국 내가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번 산행을 통해 깨우침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하고 탈 없이 오르내릴 수 있어 감사한다.


앞으론 욕심부리지 않는 산행 그리고 계획적인 삶을 살아야겠단 생각으로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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