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께서 내 이름자 에다 믿을 신(信)을 넣어 주셨다. 열심히 믿으라고 그리 지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 그래서 한때, 그 믿음에 전부를 걸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길어야 작심 3년?으로 끈기가 부족했다.
살다가 급하면 찾았다. 그러나 원하는 그 무엇이 이뤄지면 마치 나의 노력으로 그리된 것처럼 다시 본성대로 살았다. 돌아보면 가다 멈추고 원한 것이 이뤄지면 또 다른 그 무엇을 또 바라고,,, 그러다가 꼬였다.
꼬여도 많이 꼬였다. 어디를 잡고 풀어내야 할지 몇십 년을 방치한 내 마음과 몸과 관계들이 한마디로 엉망이 되어버린 것을 늦게야 알아챘다.
그래서 몸안의 세포가 역할을 제대로 못해 어긋나기 시작했다. 또한 수많은 세포로 구성된 장기 또한 혼돈이 왔을 것이란 걸 깨달은 것은 아픔이 병적인 것을 안지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러니 이번에야 말로 정말 간절히 기도해야 했다. 그런데 그리 간절하지 못했다. 아니, 간절할 단계까지 가지도 못했다. 내 탓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 내 탓보다 남 탓이 더 많았으니까,
두려움도 불안도 두고 게으른 마음도 건너뛰어야 했다. 나의 시간 중에 얼마쯤이라도 마치 물건을 살 때 재화를 지불하듯 기도해야 했다. 별로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 늦은 아침 기상시간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성서에 보면 하느님께서는 맏물 또는 맏자식 등 어떤 것이든지 처음을 무척 좋아하신 듯했다 처음을 좋아하는 건 성서 속의 하느님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무속신앙에도 첫새벽에 정안수를 놓고 빈다는 이야기는 많으니까 말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첫 아침의 기도는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려면 일찍 자야 했다. 아니, 그전에 몸이 노곤하다 싶으면 슬그머니 옆으로 몸을 기대는 습관을 고쳐야 했다. 고맙고 감사하게도 난 어느 자리에 있든지 자야겠다고 마음먹고 눈을 감으면 이내 잘 수 있는 잠꾸러기였다. 그러니 낮잠을 잔 그날 밤은 늦게까지 꾸물럭 대다가 취침시간이 늦어버리면? 다음날 기상시간도 영락없이 늦을 수밖에 없다.
왜? 벌써 오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데 익숙해 있으니까,
게다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몸무게와 근육량인 약체로 오래 살다 보니 나 스스로 약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이에 덧붙여서 병원 검진을 갈 때마다 의사는 마치 시한부 대하듯 단답형으로 수술만 권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그리 하지 않았으니까,
불안한 마음보다 더 불안한 수류탄만큼 큰 종양을 지닌 채로 그냥 살고 있으니까,
벽돌 같은 기도를 먼저 짚기 전에 기초공사를 해야 했다. 낮잠을 포기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노래 부르고 책을 읽고 잠시라도 걸었다. 샤워나 온탕 이용을 좀은 늦은 오후에 했다. 그러자 취침시간이 빨라지고 있었다.
어느 아침에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하던 아침 기도를 텔레비전으로 바꾸고 성서 읽는 시간을 늘려갔다. 기도가 끝나면 짧게나마 요가를 시도했다. 그런 노력으로 몸에 익히는데 거의 백일쯤 소요되었다.
나는 여전히 집에서 살고 있으며 무겁던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새로 살아가야 할 마음의 집 지을 벽돌 같은 기도시간을 찾아 노력한 결과 언제든 대기상태였던 병원행은 봄날로 미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