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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Apr 28. 2024

한 발자국 나아갔음을 느끼는 때

'내가 과거의 일들을 울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때'

나는 최근에 다시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했다.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욕먹을 일도 이유도 아닌 상담치료? 상담치유? 의 마음.


그  언젠가 그러니까 2~3년 전만 해도 분노와 극한의 번뇌에 가득 차 어쩔 줄 모르는 바다의 한가운데 빠져 살려달라고 절규하기 위해 다급하기 찾았던 곳이 심리상담센터라면,

지금의 나는 폭풍이 한바탕 휘몰고 간 자리에 안정은 찾았고 아주 작은 집이나마 다시 벽돌을 쌓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벽돌과 벽돌사이에 지나간 폭풍에서 비롯된 파편 조각들이 끼어있어

올곧은 조립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쌓아온 벽돌을 다시 무너뜨릴지, 파편의 조각만 떼어내야 하는 건지, 그 파편이 조각을 아예 소각해 없애야 하는지 , 그럼에도 언젠가 역사의 자료가 될지도 모르니 남겨두어야 하는 건지, 그런 고민조차 차치하고 일단은 안 보이는 곳에 매립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싶어 찾아간 곳이다.


사실보다 내밀하게 들여다보자면, 새로운 집의 벽돌을 조금 급히 쌓으려 했다. 그 집에서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추우면 창문을 닫고, 더우면 창문을 열며 적당한 바람결이 내 얼굴과 몸을 스쳐가는 행복한 상상들만 하고 있었다. 이제는 견뎌갔으니 내 몸은 폭풍의 여파로 지금은 오들오들 떨고 있을지언정.

돌들을 빠르게 쌓아 얼른 단단한 집 한 채를 작게나마 지어내고 싶었다. 번지르르 한집보다 3~4명 들어갈법한 아담한 집을 단단하게 짓고 싶었는데 별돌 끝 아귀가 잘 안 맞는 거다. 파편을 발견했고 휙 떼어내려 뜯어내는데 알고 보니 벽돌도 제대로 안 말라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파편만 떼어내려던 것이 별돌과 엉겨 붙어 벽돌이 무너졌다.


그 벽돌을 집을 지을 땐 의미가 없는 , 쓸모가 없는, 써서는 안 되는 벽돌이니 버리고 다른 준비된 벽돌을 집어 들어 차곡차곡 쌓았으면 좋았겠지만, 그 별돌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걱정회로가 발동하며 이제껏 만들어놓은 벽돌에서도 파편은 없는지 하나씩 헤집어보다 결국 집을 망가뜨리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가장 낮은 층의 벽돌밖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생각했다. 아, 무너뜨릴 필요는 없었구나. 의심의 여지없이 의심할 필요 없이. 잘못되었다면 아까 겪은 것처럼 벽돌 아귀가 맞지 않았을 텐데. 그냥 현재 일어난 상황에 집중하면 되었다.


그렇게 다시 또 두려운 마음이 나를 휘감았다. 어제가 5회 차 상담이다.

나는 이번 상담에서 (그러니까, 매번 중도하차를 했을지언정 상담치료라는 것을 2회 이상 갔던 회기를 떠올려봤을 때 처음으로 상담 전, 중, 후반 그 어디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첫 상담이 아닐지라도 온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건들 때마다 정도의 차이일지언정 눈물, 분노 등의 감정표출이 나오게 마련이건만,.. 나는 비교적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상담전문 선생님조차도 이미 폭풍이 몰아치고 지나간 것 같군요. 지금은 참 잠잠해 보여요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을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마음이 묘하다.


그렇구나.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니,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 가정환경도, 학창 시절의 기억도, 10여 년의 전 직장에 대한 기억도.

죽을 것같이 힘들고 힘든 줄도 모르고 그게 나의 세상 전부인 것처럼 겪어낸 십수 년의 어둠의 터널도.

이제 나는 그저 덤덤하게 누군가에게 이야기 책을 읽어주듯 꺼내 볼 수 있게 되었구나.


이렇게 살아지는 거구나. 살아가는 거구나. 어느 한 챕터의 서사가 마무리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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