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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May 01. 2024

불안 따위에 38년을 휘둘린다

가만히 있는 순간이나,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도 그 틈바구니를 잘 침투할 줄 아는 것 중 하나가 '불안'이라는 감정이다.

때와 장소를 기다리지 않고 언제든 침투하고야 만다. 그 크기도 그 무게도 가늠할 수 없고 접착력도 좋아서 떼어내려 해도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스며드는 능력은 또 어찌나 좋은지 흠뻑 젖었다는 표현보다 서서히 스며들어 어느샌가 내가 젖어있다는 느낌조차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침투해서 결국 온전히 한 몸이 되어버리고 만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갖고 놀 줄 아는 능수능란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처음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피하려 했다. 그런 환경에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쳤고 안전한 성을 쌓기 위해 차곡차곡 밑바닥부터 노력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언젠가 무너지는 것만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건축물을 받치고 있는 약한 기둥에 다름없다. 기둥을 아무리 철근처럼 보이게 하는 페인트를 입힌다 한들 그것이 약한 소재의 기둥임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무모한 행위를 그만두고 이제는 불안이라는 것을 객관의 눈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극히 주관적인 눈으로 스펀지처럼 불안을 빨아들이고 있는 내 모습이기에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 한숨이 팍 나온다. 주부들 또는 자취하는 이들은 알지 모르겠는데 싱크대에서 설거지하는 그 자리가 울화와 화병의 스폿이다.

그렇게 한숨이 팍팍 나오고 온갖 잡생각은 그때 든다. (자매품; 양치할 때....)


아무튼 오늘도 낮시간 집에 있으며 설거지를 하다 떠올랐다.

왜 이리 불안할 걸까? 특별히 나쁜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대단한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니다.

어제  이사님의 요청을 거절한 나를 싹수없게 보진 않을까? 그 싹수없음을 대표에게까지 전하는 건 아닐까?

혼자 신사적 인척 다하지만 알고 보면 꼭 시어머니 이미지처럼 잔소리를 하고 싶은데 자신의 넓은 아량과 배포로 잔소리를 참으며 자신이 참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같은 직장인들의 앞길을 좌지우지하기도 하는 이곳은 한국 사회니까.


아무튼 차치하고, 왜 이리 불안함이 생길까 다시 떠올려본다.


주로 휴식이랍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오더라.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진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 아니라,  회사에 업무를 하지 않으며 나를 위한 일은 쉬지 않고 무엇이라도 해야 하며 그것을 자기 계발이라고 표현하는데 나의 계발을 위해서도 게으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더라.


정말이지 침대에서 휴대폰이나 보고 보고 싶은 영상이나 보고 지금처럼 글 쓰는 행위로 하루를 채우면 이 하루는 자꾸만 망친하루, 흘러간 하루, 게을렀던 하루를 나 스스로도 각인하고 있었다.

거기에 내게는 아이가 둘이 있다.


내가 게으르면 아이들도 같이 게을러진다. 나도 매일을 살길을 찾아 헤매고 진짜 사람, 진짜어른이 되려고 방황 중인데 내 아이들에게 안정감은커녕 불안감을 대물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그 불안은 배가된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상들이다.


"넌 시부모님 있어도 누워있잖아. 너는 시부모님 있어도 쉬고 싶으면 쉬잖아."

"아니, 시부모님이 있으면 쉬면 안 되는 거야? 오히려 내가 쉬어야 할 때도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는데 이게 쉬는 거 맞아?"


이렇게 의미 없는 감정싸움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런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결국 불안의 근원이자 결과다.

매일을 이러고 산다.


불안... 이 빌어먹을 것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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