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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Jun 26. 2024

여기서 어떻게 더 힘들어?

삼재와 아홉수의 굴레


아주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생 시절에 이르기까지  미신, 토속신앙에 줄곧 의지해왔던 엄마로인해 자세한 뜻은 몰라도 삼재, 아홉수, 살이 꼈다, 원진살과 같은 용어들을 무방비상태로 듣고 자랐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엄마도 그런 미신에서 벗어나 다행히도 불교에 귀의하며 살고 계시다.


나 역시 중학생 시절부터는 자연스레 불교에 귀의하며 힘든 일이 있을 때 경전을 읽거나 절을 하는 등 스스로의 마음씀씀이, 행동거지의 변화를 통해 일들을 풀어나가려 애쓰는 삶을 살아왔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마음에 힘이 한없이 약해지고 저하되면서 마음속 절망을 느끼는 순간, 포기하려다가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머물게 되는 지점이 바로 미신인 것 같다.


내가 아무 일 없을 때는 아무렴 이성적이고 논리적 판단이 가능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음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길을 잃거나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아 방황하는 시점에는 논리고 이성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라도 잡으며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몰랐어도 될 삼재, 아홉수와 같은 말들을 듣고자란 덕분에 나는 내년에 서른아홉이 되는 시점을 30대의 마지막이라는 생각보다는 삼재의 아홉수라는 것에 방점이 맞춰졌다.


사실은 여기서 더 힘들 수가 있는 건가, 20대 내내 삼재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고 그나마 나아지는 듯 싶더니 서른다섯 이후부터 암같은 삶을 살며 죄없는 남편까지 괴롭히다 시피 매일을 하소연으로 삶들을 지새우고 있다가 이제사 조금 덜해지고 있는데 또 다시 삼재라니.. 거기에 아홉수까지? 이런 절망감을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갖 살고있다. 잊다가도 불연듯 스민다.


설상가상, 12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언니가 스물아홉에 삼재였다. 굳이 그런 점들을 읊어가며 고난이 왔을 때 어떻게든 이유를 대는 친정식구들이다. 하하. 그런 일들을 과거에 겪고 나니, 내년 나의 상황은 어떨지 벌써부터 겁이 난다.


가족 중, 친정, 시댁식구 중 누구 하나 잘못되는 거 아닌가. 차라리 내가 잘못되는 게 나은데. 가진 것도 없는 내가 혹여나 직장도 잃고 가진 것도 다 잃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 남편과 사이가 틀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오만걱정들.


이런 걱정들을 안고 살다 보니, 내년을 앞둔 시점에 요즘 회사가 송사로 시끌시끌한 것도 불안하고 친정식구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한 것조차 불안하다.


이제더는 견딜힘이 없기에 마냥 피하고만 싶은것도 사이다.


그러다가도 밤낮으로 경전을 읽으며 내 주변 인연들의 건강과 희망을 갖고 사는 삶을 빌고 있지만, 사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내 스스로에게 자신 없다.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말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안하다.

끄나풀이라도 있다면 믿고 의지할 곳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삼재라는 건 지난 12년간의 살아온 삶을 심판받는 시기라는 어느 스님의 말이 차라리 위안이 된다.


누군가에게 상처준 일은 있을지 몰라도 나쁜 짓하고 살지는 않았으니 괜찮으려나 싶다가도 생길 일은 생기고 겪을 일은 겪어야만 끝난다는 세상의 순리를 져버리긴 어렵다.


그래서인지 모든 인간관계, 사회관계, 가족관계에서도 조금만 안 좋은 일, 트러블이 생겨도 벌써 삼재가 미리 시작된 거 아닌지 고민부터 든다. 두렵기까지 하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무당점집을 가복도하고 뭐라도 잡는 심정으로 등을 달아보기도 하고.


다시 정신 차려 그런 나를 반성하며, 집에 있는 경전을 읽기도 하고 마음을 강하게 키우려 1주일 넘게 매일밤 2시간 가까이 달리기, 걷기 운동을 하며 정신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아무런 사회관계도 인간관계도 없이 집에서 가족들하고만 살며 숨어 지내면 모든 삼재를 피할 수 있는 건가 의미 없는 상상을 해보다가도 이내 걱정으로 마무리하고 만다.


삼재나 아홉수가 두려운 이유는 내가 가진 무언가 그것이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잃게 될까 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저 내가 아끼는 사랑하는 인연, 가족들이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만가 준다면, 아프더라도 내가 아프고 삼 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라는 건 없다. 하지만 가족을 지켜야 하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으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려면 사회관계를 해야 하고, 그러면서 모든 인적 물적 네트워크들이 넓어지다 보니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지는 것 그뿐이다.


어떤 날은 모든 걸 다 깨우친 성자 같은 마음이었다가, 어떤 날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불안이 엄습하곤 한다.


깡으로 외쳐본다. "이제껏 힘들었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힘들어?" 이제껏 잘 견뎌온 만큼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사랑하는 이들이 건강히 버텨주기만 한다면, 그렇게 살아주기만 한다면 그저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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