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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Oct 26. 2024

우리 삶이 언제는 삼재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이별을 누구보다 축하해 주던 사람들


일이 되려면 어떻게든 된다. 당연히 안될 거라 생각해 포기했다가도 우연히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거짓말처럼 내 코앞에 당도해 있기도 한다. 요즘말로 될놈될의 상황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반대로 사람이 무너지는 데에는 서서히 잠깐의 시간을 부여하다 급기야 찰나의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모든 것을 짜 맞춘 듯 마치 무너지기 위해 모든 준비를 철저고도 촘촘히 해온 것처럼 여러 개의 문이 다 잠기고 열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하나씩 노력해 보면 아주 오래 걸려도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라도 건질 수 있으련만 보통 이쯤에서 구부러진 열쇠마저 돌이킬 수 없는 급류에 던져버리는 건 나 자신이며 내 마음이 그리 만든다. 내 마음줄마저 어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하늘의 뜻일까? 그놈의 삼재가 무엇이었길래 이렇게 나를 괴롭혔던 것일까? 




"저 서른이 되기 전에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안될 거라 생각했는데 2차 시험까지 통과했어요. 3차 최종면접에 다녀오려고 해요."


대졸도 아닌 나를 뽑을까 싶어 채용공고가 뜬 줄 알면서도 확인만 하고 지원하지 않았던 자리에 결원이 생기며 몇 주 만에 두 번째 채용공고가 떴다. 무슨 자신감인지 내가 될 거라는 막연하지만 알 수 없는 촉이 있었다. 다음 기도 손님이 와서 관음기도를 접수하고 가고, 일 년 등을 밝힌다며 내미는 신도의 카드를 단말기에 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곳의 채용공고만을 떠올렸다.


그런 나를 몇 주 전부터 이상하다 싶었는지 눈여겨보던 사찰 종무실장님은 나를 따로 부르더니 말했다.


"너 그 신문사 지원했지? 거기 국장에 나한테 전화 왔더라. 너 어떤 애냐고."

알고 보니 내가 지원한 신문사 국장이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사찰의 종무실장과 고향 선후배 사이였던 것이다.

"거기 갈 거냐?"

"네.."


최종 합격자 공고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나는 마치 합격해서 곧 입사할 사람처럼 대답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정말로 3일 후 합격자 공고 명단에 등재되었고 8일 만에 퇴사 준비를 해야 했다.


돌이켜보니 이 사찰에서 일했던 딱 11개월의 시간은 내 인생의 안식처였다. 퇴사를 앞두고서야 알았다. 상처와 겁에 절여진 뇌가 이 사찰에서 근무하면서 어느 순간 일상성을 많이 회복하게 되었다.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몇 달에 한번 정도는 마음먹고 만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생채기도 조금씩 새살이 돋고 있었다.


이들중 어느 누구도 8일만에 퇴사를 준비해야하는 나를 원망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좋은일이라며 격려해주었고 축하해 주었다. 내가 이렇게 좋게 퇴사하게되 너무 기쁘다고 우리 잊지말라는 격려까지 해주었다. 직전회사에서 심리적으로 쫓기듯 나올때와는 너무다른 따뜻함에 눈물이 울컥 나오려했다. 그렇게 나는 축복을 받으며 정리할 수 있었다. 나와의 이별을 이렇게 웃으며 축하해주는 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곳에 왔던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내 가피만 입다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퇴사를 3일  정도 앞두고, 연말에서 연초로 넘어가는 12월 31일 내가 일하는 사찰에서는 송구영신 법회를 했다. 초저녁부터 시작해서 철야기도를 하는 일정이었다. 3,000배 정진이 시작되기 전 법회의식이 끝난 후 설법시간에 주지스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곧 있으면 갑오년 60년 만에 찾아오는 청말띠해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새해맞이하시고 복 많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보살님들 삼재 정말 많이 무서워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삼재는 내게 다가올 3년 동안, 지난 9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거울로 비추며 부처님께 평가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신구의 삼업 짓지 않고 공덕 쌓으려 노력하고 살았다면 삼재가 와도 살짝 치고 갑니다. 조심하라는 경고정도만 주는 거죠. 그래서 그때 오는 삼재는 무서워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삼재가 아니어도 자식들에게 차조심해라 빙판길 조심해라 당부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로 보시면 돼요. 어쩌면 부처님께서 수고했다 하고 격려해 주실지도 모르죠. 그게 복삼재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난 9년간 살아온 모습이 아집, 탐진치에 빠져 살았다면 그 과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더 많이 참회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진심으로 되뇌고 실천하면 나아질 겁니다. 모든 건 인과응보이기 때문에 사실 삼재라는 게 없어도 잘못한 사람은 벌 받고 공덕 쌓은 사람은 선업 받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것만 기억하세요!"


주지 스님의 말씀이 너무도 위안이 되었다. 이런 말을 그 시절 진작에 들었다면 조금은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신구의 삼업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인과응보의 이치를 보다 가까이 알고 있었다면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과오, 고통과 상실에의 슬픔을 핑계로 허구한 날 술에만 빠져사는 일을 하진 않았을까?


그럼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지나간 일에 대한 과보를 받을 것이란 사실을 잊지 않고 , 지난 3년 내가 겪은 슬픔은 그 이전에의 나의 삶의 결과일 뿐이란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그렇게 지긋지긋한 삼재를 보내고 곧이어 아홉수를 맞았다. 삼재의 아홉수면 옛 어른들은 그저 납작업드려 지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위험한 시기다.

하지만 나는 그해 남들은 다 꺼린다는 결혼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남편과 단 한 번의 큰 싸움 없이 화목하게 아이들과 건강하게 다복하게 잘 살고 있다.


여기서 가장 아이러니한 포인트가 있다. 죽을 만큼 힘들 시기, 그때는 내가 삼재라서 관재구설수가 보이며 단순 이동수가 아닌 모든 걸 다 잃고 직장이며 모든 걸 잃게 될 거라고 했던 역술가는 시간이 지나 내게 이렇게 말했더랬다. 사실 정묘생 토끼띠는 복삼재였으며, 아홉수여도 다 나쁜 것이 아니며, 아홉수에 아이를 출산하면 오히려 그 안 좋은 기운이 좋게 바뀐다고.


아니, 가장 지옥같이 힘들던 시기 어보지 못한 말을, 번듯이 그해에 결혼하고 사찰에서의 근무를 끝내고 큰 언론사로 이직하게 되고 차차 일들이 풀려가고 있다 하니 갑자기 악삼재가 복삼재로 바뀌고 아홉수는 모두가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을 한다. 그 점술가가 모시는 신의 공수가 바뀐 것일까? 신이 아닌 인간의 생각과 말로 내게 떠든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삼재니 뭐나 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의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내가 죽을수도 있었던 시기였지만 복삼재를 맞이했기에 이 사찰에 와 일을 하게 된것일까? 진짜 진실은 나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네 인생이 언제 삼재 아닌 날이 있었던가? 늘 신중해야 하고 늘 조심해야 하며 늘 침착해야 한다. 늘 사람을 신의로 대하며 마음관리에 힘써야 한다. 만국 공통 인간에게 필요한 거다. 단지 삼재라는 건 그런 사실들을 보다 더 유념하여 신경 쓰며 지내야 할 특별한 시기라고 생각하면 좋다. 내가 비행기 탄 듯이, 또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탄사람처럼 앞만 보고 가다가도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잘살고 있는 건지 나 스스로를 점검받기 위해 잠깐 멈추어 쉬었다가는 시간을 삼재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12년 전 맞이했던 삼재와 아홉수에의 화살을 정면으로 맞았었다. 그리고 9년이 지나 다시 맞이하게 된 삼재와 아홉수에의 관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되내인다.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겠다고. 화살은 첫 번째로 족하며 그 화살이 다시금 내 가슴에 꽂힌다 한들 튕겨나갈 만큼 단단한 심신을 만들겠다고. 적어도 떨어진 화살을 내손으로 가슴팍에 다시 꽂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3년간의 삼재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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