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데 중간에 사람이 탔다. 눈이 마주친 둘은 서로 멋쩍어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꾸벅 인사를 주고받았다. 뒤에 서서 화면의 숫자만 헤아리던 그는 신경이 쓰였다. 어딘지 낯익은 느낌이었다. 머리에 새치가 듬성듬성 자라난 사람이었는데, 아저씬지 젊은인지 모호한 인상이었다. 인자하면서도 앳된 눈의 표정이 관심을 끌었다. 그는 염치 불구하고 그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마음에 은근슬쩍 곁눈질을 하다가 당황하였다. 그 사람이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굉장히 높이 올라가시네요.
그는 바로 답해주지 못했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기억이 났다. 소년이 좋아하던 목소리였다. 소년은 이 목소리가 부르는 어쿠스틱한 곡을 따라 부르며 동경했었다. 그는 아니었다. 소년이었다면 완전히 딴 세계 사람을 본 양 심장이 쿵쾅거려 말이 안 나왔겠지만 그로서는 하필 이런 때 마주쳐 둘 모두에게 곤란하게 됐단 생각에 씁쓸함을 삼키느라 답이 늦었다. 예전보다 살이 찌고 후덕해진 용모의 가수는 목소리가 여전히 좋았다. 그는 이 점을 특별히 언급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가수는 겸손하게 받더니 이번에 운 좋게 마텔에 기용되어 재기를 하게 되었다며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누른 층 버튼을 기웃이 보는데 입가의 미소가 한일자로 다물리는 것이었다. 그는 짐짓 외면하였다. 얼마간 잠자코 있던 가수는 내릴 때가 가까워져서야 다시 말문을 열었다.
실례지만 이렇게까지 높이 가는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요.
그는 룸서비스를 부탁한 손님이 그 층에 묵고 계시다고 사실대로 얘기하였다. 그런데 가수가 그래요?, 라며 너무나 우려하고 걱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봐 그는 동요하고 말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되었다. 높아봤자 건물 안이었다. 게다가 가수 자신이 가는 층도 이름이 희한했다. 이 승강기에는 숫자로 표시된 층 버튼이 없었다. 숫자 단위의 층들은 버튼 밑의 단말기 액정화면 문자표를 두드려 직접 입력하게 돼 있었다. 따라서 모든 층 버튼은 문자 혹은 기호이거나 기호와 문자의 조합으로 표시된 것들이었는데 그중에서 가수와 자신이 누른 두 층 사이의 버튼은 열 손가락 남짓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큰일 날 높이처럼 구는 가수에게 슬며시 반감이 일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다소 움츠러들고 있었다. 북돋워주는 말까지는 아니어도 덤덤한 반응 정도는 기대했다. 그런데 말 한마디, 눈빛 하나 말리지 않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짜증이 나 더 말을 잇기가 거북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사이 가수가 누른 층에 도달했다. ‘땡Q’, 층이었다.
등을 보이고 걷는 가수 앞으로 회색빛 공간이 펼쳐져 갔다. 바닥이 판판한 실내는 탁 트이고 널찍했지만 어째 분위기가 산업단지 내부마냥 삭막했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벽의 색조부터 탁하고 목쉰 음성 같았고 흐린 조명과 실재감 없이 굴러다니는 전동바퀴들은 눈에 닿는 족족 땡, 네 생각은 틀렸어, 라며 이렇게 되묻고 있는 듯했다. 삶은 물건이다, 한 물건도 없이 살 수 있나? 전망이 이런데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일별한 가수의 눈에 이쯤에서 내리지 않을래요?, 라는 친절하고 조심스런 권유가 담겨 있어 그는 퍽 심란하였다. 손으로는 단호히 거절하듯 닫힘 버튼을 눌렀지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문이 닫히고 혼자가 되었을 즈음에야 차츰 가라앉나 싶었다.
그런데 무심코 올려다본 층 버튼에 불이 나가 있었다. 화면에도 층 이름은 뜨지 않고 화살표만 계속 상승모드였다. 버튼을 연거푸 눌러봤지만 불은 다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승강기가 제멋대로 멈춰 서기 시작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은 뵈지 않고 바닥만 썰렁하니, 이상했다. 멈출 방법을 알지 못했다. 승강기는 어떤 버튼을 눌러도 말을 듣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올라갔다. 간혹 서더라도 어느 층인지 모르니 매번 너무 높이 와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는 붙잡고 있던 쟁반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쿠키가 쏟아지지 않도록 주의해서 배꼽에 대고 꽉 부여잡았다. 이때 또 승강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그는 실내가 아닌 실외를 보았다. 까마득한 아래 차들이 쌩쌩 달리는 철교가 놓여 있었다. 믿기지 않게도 승강기는 케이블카마냥 공중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설계가 가능하지? 그러나 놀라고만 있을 틈이 없었다. 다음 층에선 밖을 내다볼 새도 없이 시커먼 날벌레들이 들이닥쳤고 아무리 손으로 쫓아 날려 보내려 해도 다리를 승강기벽에 딱 붙인 채 떨어지질 않았다. 그는 불쾌하고 초조해졌다. 하지만 어떻게. 승강기는 통제 불능이고 밖은 바닥없는 공중인데, 어떡하라고. 이대로 시체처럼 가만히 몸을 싣고 다음 층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언제까지. 이 운행이 언제쯤 정지할까.
승강기가 다시 멈췄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가 본 것은 하늘이었다. 발 디딜 곳 하나 없이 뻥 뚫린 대기와 구름이 눈앞에 있었다. 아래론 좁은 산마루가 하나 내려다보였는데, 원근감이 불확실했다. 짙은 덤불이 솟아올라와 있다고 착각하리만치 수북한 우듬지의 잎들이 무척이나 생생해 보여 오히려 무지개같이 빈 느낌이었다. 뺨이 얼얼했다. 그는 피부로 스미는 공포에 화들짝 놀랐다. 고립무원. 이곳이 天층인가.
승강기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전망 앞에 얼어붙은 듯 문조차 닫히지 않고 있었다. 하늘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는 신이 아니었고, 신적인 어떤 것도 그곳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오로지 승강기의 얇은 바닥과 벽에 의지한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서 있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곳이 사라진 이 높이에서 투명하고 가벼운, 그래서 잡히지 않는, 아니 잡을 수도 없는, 두 발을 떠받치기엔 턱없이 비어있는 공기에 막혀 꼼짝할 수 없었다.
그는 가까스로 손가락을 닫힘 버튼으로 가져갔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에 힘을 모아 거푸 세 번을 눌렀지만 문은 안 닫혔다. 그는 몸서리쳤다. 몸의 감각이 얼음을 뒤집어쓴 듯 끔찍하게 활성화되었다. 뼛속까지 와들거릴 정도의 지옥 같은 현실감이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정신이 잃어지지도 않았다. 죽음이 도사렸다. 당장 눈앞에 닥쳐와 있는 죽음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주저앉아지지도 않았다. 그는 극도의 각성 상태로 살아있었다. 이 이상 살아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살아있었다. 그는 전신이 깨지도록 부르르 이 의식을 통감했다.
바닥이, 바닥을 이루는 격자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끔쩍 고개 들었다. 좌우로 문이 도열한 복도였다. 하늘은 간곳없었다. 마치 꿈에서 깨난 것 같았다. 몸에서 한기와 열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때서야 용케 쟁반을 떨어뜨리지 않은 손을 의식하고 철렁했다. 숨을 여러 번 몰아쉬고서야 뒤를 돌아다 볼 수 있었다. 감쪽같이 맞물린 승강기 문짝이 건너다보였다.
저 문을 나온 기억이 없는데. 그는 이 순간과 승강기 안에 있던 순간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정신이 또렷또렷 밝아 쟁반에 붙은 노란 포스트잇을 보자 당장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그는 확실한 이 한 가지를 붙잡아 고개를 바로하고 앞으로 되풀이해 발을 밀었다.
문득, 더 가고 싶지 않아졌다. 왼편의, 서른여섯 노파의 방, 이라고 적힌 문패 옆이었다. 지나쳐온 어떤 문에도 이름이 없었다. 그저 순차적인 자연수의 스침이었다. 이 방을 사이에 낀 두 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깔축없이 복도의 질서에 따르고 있었다. 이 방만 유독 질서를 깼다. 홀로 숫자를 거부하고 방주인의 개성에 맞춘 이름을 부여받고 있었다.
여기구나. 그는 너무 긴장되어 이 남다른 문짝의 너머를 구경하는 것은 고사하고 과연 자신이 문을 두드릴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문은 작았다. 그는 그 작은 문 앞에서 다시 망설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휩싸이게 될 상황이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럼에도 몹시 열고 싶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天층에서의 지옥 같은 현실감을 맛보고 난 뒤였다. 뭘 더 망설일 게 남았다고 이래?! 그는 주먹을 쥐고 뼈마디를 세웠다. 노크 소리가 심장박동처럼 복도를 메웠다. 안에선 기척이 없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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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까보다 세게 문을 두드렸다. 잠잠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상냥하게 저기요, 불렀다. 소용없었다. 그는 잠시 그대로 서있다 들어 올린 주먹을 풀어 문손잡이로 뻗었다. 손잡이는 유선형이었다. 날렵하게 휘어있었고 은빛이었다. 수면 위로 첨벙 뛰어올랐다 도로 입수하려는 찰나의 돌고래같이 보였다. 그가 이 돌고래의 머리 부분을 쥐고 슬며시 가라앉혔을 때 덜컥 문이 열렸다.
신발 벗는 곳도 문턱도 없는 좁은 통로가 나왔다. 넘겨다보니 통로 오른 벽이 방 안으로 곧게 뻗어나간 반면 왼 벽은 ㄱ자로 꺾여들고 있었다. 그는 구둣발로 내디디며 묘하게 q자 모양을 닮은 방이라고 생각했다. 언뜻 눈에 닿은 전면 창유리에서 햇빛이 근사하게 스며와 어두운 통로 벽에 흰 줄을 긋고 있었다. 느닷없이 갤러리 복도를 걷고 있는 착각이 일었다. 어떤 그림이 나올까 잠깐 설레었다.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아늑하게 느껴지는 안은 거의 비어 있었다. 의자도, 침대도, 냉장고도 없이, 방 복판에 있는 탁자가 세간의 전부였고, 심지어 화장실도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창문이 유별나게 많았다. 크기가 제각각인 창들이 둥그스름한 벽의 반 이상을 모자이크처럼 뒤덮고 있었다. 창문의 방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어. 그는 감탄하며 창들을 두리번거리다 놀라 멈칫했다.
미역같이 검고 치렁한 생머리로 얼굴을 다 가린 사람이 왼편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물에 빠진 것을 가까스로 건져낸 듯한 몰골이었다. 문패대로일까. 그는 호기심을 누르며 주문하신 룸서비스를 가져왔다고 친절한 어조로 알렸다. 조그맣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 이런 원리를 생각해 봤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곤 이 한마디뿐이었는데 무슨 원리인지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둥근 탁자에 쟁반을 내려놓고 가만 기다렸다. 어렴풋하게 이대로 끝날 리 없다는 예감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