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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 Oct 16. 2021

마이너 소리, 메이저 소리

햇살과 비의 반복처럼

목소리에도 ‘마이너 소리’와 ‘메이저 소리’가 있다고 한다. 

마이너 소리는 장음이 아니라 단음으로, 플랫이 입혀진 소리다. 피아노로 치면 검은 건반 쪽인데, 약간 슬프게 들리고 어둡게 들린다. 

메이저 소리는 장음으로, 피아노의 하얀 건반 즉 밝은 소리다. 애니메이션이나 밝은 광고 영상에서 주로 들을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메이저 소리는 인싸, 마이너는 아싸인 셈이다.  

가장 좋기로는 메이저 목소리와 마이너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글의 느낌에 맞게 변화해서 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너 느낌이 목소리에 강하게 묻어있으면 메이저 소리를 내야 할 때 잘 못내는 경우가 있단다. 그러니까 어딘가 모르게 슬픔과 어둠이 묻어있는 목소리는 밝고 힘찬 내레이션을 잘 못하는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마이너 소리에 마음이 끌렸다. 소외되고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 주류에 끼지 못하는 아싸, 조명이 없는 곳에서 기웃거리고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고 어두운 정서가 안쓰럽고 짠했다.      


아마 그건 어린시절 성장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뭔가를 넘치도록 받거나 풍족했던 적이 별로 없었기에 마이너에 익숙했다. 더구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나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던 사춘기 시절에는 마이너이다못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감정을 겪었다. 그 감정 후에는 곰팡이 슨 화장실에서 불안한 미래를 그렸던 20대의 방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조리한 사회의 탁한 소리도 들렸다. 그래서 내 목소리는 대부분 작고, 슬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고 슬픈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늦은 밤의 적막한 소리를 좋아했다.      

가족도 사회도 신경쓰지 않고 내 멋대로 살았던 20대 중후반, 나는 드디어 메이저의 소리를 갖게 됐다. 햇빛 잘 드는 방에서 밝고 따뜻한 음악을 들었다. 복잡하고 어두운 예술영화 대신, 밝고 코믹한 로맨틱 코미디를 봤다. 늦은 밤의 라디오 소리 대신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장미꽃에 감탄했다. 

내면적으로도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다독일 수 있게 됐다. 유독 마이너에 마음이 가고 신경쓰였던 건 아마 마이너였던 내 어떤 부분을 끌어안아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걸 끌어안았을 때 메이저로 올라올 수 있었다. 동시에 마이너를 품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삶은 다시 녹록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다시 조금더 슬퍼졌고 어깨와 등은 둥그렇게 말렸다. 

냉탕과 온탕을 반복한 덕분에 이제는 메이저 소리와 마이너 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게 되었다. 목소리의 온도차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엔 메이저 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이너 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뭐든지 다 잘 할 것 같은 기업의 홍보영상 시나리오도, 악당조차 밝고 힘찬 목소리를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도, 추억을 회상하는 잔잔한 대본이나 슬픈 느낌으로 가득한 글도 모든 텍스트가 저마다의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간다. 나 역시 메이저와 마이너의 시간을 번갈아가며 살고 있다. 때에 따라 메이저와 마이너의 감정이 번갈아 나를 찾아온다.      


누군가 '나는 마이너 소리만 가지고 있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마이너를 가장 잘 다독일 수 있는 건 마이너이므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것만큼 세상에 값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보석처럼 찬란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여기면 된다.                                  


햇빛과 비를 모두 맞으며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이 메이저 소리와 마이너 소리의 반복은 어쩌면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그 때마다 우리의 삶을 위로해주거나 더 빛나게 해줄, 적당하게 밝은 목소리와 적당하게 슬픈 목소리가 곁에 변함없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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