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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ck Cat Oct 09. 2021

자존감과 자존심의 구별 지점에서 나를 바로 세우기

자존감은 자존심을 어느 지점에 세우느냐에 달려있는 것

자존심이라는 것은 나의 위상을 내 스스로가 어느 정도로 세울 것인가와 마찬가지로, 내가 세상에서 포착하는 대상들을 특정한 단어로 함축하여 '나'라는 인식의 망에 담아두고 있느냐와 연관이 있다. 세상에 넘쳐나는 정보들 중 인간은 자신과 특별하게 엮이는 대상의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하여 연상하기 쉬운 이미지로 내면화시키게 된다. 그 이미지라는 것은 세상에서 떠다니는 속설들, 자신의 신념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어느 정도 공고하게 형성된 자기 가치관의 프레임으로 바라본 세상의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한순간에 떠올리게 한다. 자존심은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세상의 단어들이 얼마나 강하게 유착되어있는지의 정도와 관련있다. 내가 흘려보내기보다 나 자신으로부터 그 단어의 관계가 얼만큼 유의미하게 유착해있도록 하는가의 정도에 따라 나의 세계 안에서 단어들의 상호 연결망이 특정한 모양새로 구축된다. 내가 나의 컴플렉스라고 생각하거나 특별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지점들을 중심으로 나의 연관 단어들은 포착된다. 나라는 프레임을 통해 나를 최대한으로 구겨지지 않게 위상을 높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그 단어들은 변형되기도 왜곡되기도 한다. 나의 세계 안에서 나의 단어들은 이기적이게도 세상과 무관하게 나라는 존재를 안심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최대한 정리정돈되곤 한다. 자존심이라는 것은 그런 단어들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의 중심이며 나로 인해 파생된 어휘체계의 망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하기에 그 망을 토대로 나의 인식의 프레임은 특정하게 고착된다. 인간은 언어의 세계 속에서 사유하고 추상적 자아를 언어로 형성해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어에 의해 내면의 점화가 일어나고 자신의 인격체가 일정 틀 안에서는 유동적으로 변형을 겪어나가게 된다. 자신의 컴플렉스가 어렸을 때 수술한 상흔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사람의 몸과 관련해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중 사람의 몸에 난 흠집이나 외모적 평가에 대한 말에 관한 것이라면 그냥 나와 무관하게 흘려 보낼 수 없는 것인 것처럼 말이다. 그 상흔 때문에 자신의 가치가 어떤 이유에서건 비하되는 것 같다는 의식을 자의식 과잉으로 인해 계속 확대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자존심은 결국 자신이 세상과 세상 속 선택적 언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의 문제이다. 그 선택된 단어들은 나의 프레임으로 재해석하여 수용된다. 그리고 자존심은 나만의 도식 체계 안에서 하나의 자아로서 자기동일성을 유지해주는 안정되고 일관된 관계망 안으로 포용되는 문제와 직결된다. 

나의 상흔이 나의 자존심으로서 중심에 가까운 위치에 점하고 있다면 나라는 인지체계는 나의 상흔을 자극하는 세상의 말들에 쉽게 흔들린다. 자존심의 문제란 결국 나의 사유를 보다 크게 점화시키는 중점적인 생애의 이슈로서 단어들이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결부되었기에 나의 세계는 자존심의 중점으로 작용하는 단어들이 조직하는 사유의 망과 같다. 나의 상흔 혹은 그와 대치될 수 있는 나의 자신감이자 장점이 그 자존심의 중심에 자리잡고 저변에 그로부터 파생된 부차적인 키워드들이 자리잡게 된다. 그 키워드들이란 나의 자존심의 중심에서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나의 인지에 많은 자극을 가하는 수준으로 나의 존재와 관여하게 된다. 자존심이 너무 어느 평균 이상 정도로 강하다는 것은 자신을 자극하는 세상의 단어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것들이 내포하는 의미가 그만큼 크게 자신에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므로 좋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살다보면 자신을 자극하기 위한 수많은 요인들에 치여서 일일이 자신 안으로 담아둔다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너무 무겁고 커져있기 때문이다. 지혜롭고 곱게 나이 들며 성숙한다는 것은 점차 최적의, 최소한의, 그러나 충분하고도 매력적인 자신만의 단어들로 자신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수식을 굳이 치렁치렁 달고 있고 명품백과 외제차 같은 물질적 성공의 표상이 내 삶에 브랜드로 박혀있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나만의 자존심이 넉넉하게 채워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너무 약한 자존심은 결국 말그대로 내가 살아가는 중심을 채워주는 단어들이 빈곤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나를 소중한 가치이자 절대적인 나로 정의해주는 고유 어휘들이 나의 중심으로 지탱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는 상대방의 갖가지 여러가지 말들에 의해 쉽게 휘둘리고 나의 고정된 가치관이 없어 늘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른 가변적인 나의 상태를 견뎌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존심이 약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존감도 대체로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존심이 약하면 물밀듯이 나를 공격하는 세상의 어휘에 맞서서 나를 중심 위치에 세우고 맞서서 용기 있게 나만의 뚜렷한 단어들로 맞받아칠 수 있는 힘이 약하기도 하다. 단어들의 힘에 맞서는 것은 결국 또다시 단어들의 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단어들, 나만의 말, 나만의 단어들 간의 상호체계와 전체적인 인지 틀이 어떻게 자리를 잡는지가 결국 어쩌면 나라는 정체성 전부이자 세상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나 자신이 중심이고 나라는 인지 체계가 있기에 세상은 존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전지전능한 입체적 시각이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내가 인지하는 세상이 결국 내가 있게끔 하는 것이자 내가 존재할 수 있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단어와 단어의 조합은 수만개로 불어나가게 되며 그 조합의 다양성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혹여 겹치는 생각이더라도 표현하는 방식도 그에 더불어 수없이 다양하게 뻗어나갈 것이므로 사유의 망이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면서 무궁무진하게 각각의 색을 달리하게 된다. 사유와 언어의 상관관계는 상당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나라는 존재의 조직망도 상당히 미세하게 차이점을 다채롭게 두며 공동체 내에서는 조화를 이루면서 나만의 고유성이란 이름 아래에서는 자아라는 구성 안에 혼합되어 일관된 자신만의 배타적인 색깔을 지니게 된다. 나라는 필터를 거쳐서 나오는 말들은 나만의 색깔을 반영하여 표현된 또 하나의 흘러가는 세상의 말이 되는 것이다.

사실상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하기 위해서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기도 하다. 자존감에 대한 넘쳐나는 수많은 전문가들을 비롯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 이면을 하나하나 벗겨가며 고찰해본 결과 인간은 워낙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단순히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그 심층에 깔려 있는 보다 복잡한 자존심의 문제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이야기해야만 했다. 사람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고 살면서도 무의미하게 혹은 의미있게 살도록 하는 것이 결국 자신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일정한 방식, 그가 사용하는 말과 관련있다. 건강하게 자존(自存)한다는 것은 즉 한 사람이 살아있고 살고 싶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다운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자존심(自存心), 즉 자신에 대한 마음(心)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그리고 어떤 말들이 어떤 프레임으로 해석되고 인지되어 그 사람의 내면 사유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가와 밀착되어있다. 자존심은 그 사람의 내면이 구성되어있는 모양새를 말한다면 자존감(自存感)은 그것의 아웃풋(output)으로서 어떤 감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가는가를 뜻한다. 자존감은 내가 절망스러운 대상이나 사건을 어떻게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되어있는지에 따라 절망을 절망 이상으로 느끼게도 절망 미만으로 느끼게도 한다. 그러므로 자존감은 결국 나의 자존심에 거쳐 어떻게 감각의 반응으로 나타나는가를 뜻한다. 세상은 수많은 것들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곳이다. 그 속에서 나의 자존심을 무엇으로 채워나가고 가장 나다운 존재로 만들어가기 위해 나를 어떻게 정의해갈 것인지가 결국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자존감의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당히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버리고 과감하게 정리해나갈 줄 아는 연습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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